위대한 수학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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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학 문제들
이언 스튜어트
이런저런 이유들로 굉장히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나는 여전히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에 시간을 쏟고 있다.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나 역시 그랬듯이) 이곳에 매료된 계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적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어린 시절부터 나의 긴 가방 끈은 예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음에 도달하는 시간은 서서히 길어졌다. 점점 머리가 나빠졌다기 보다는 이해하려는 개념이 점차 복잡해진 탓이다. 가방 끈이 길어질수록, 깨달음에서 오는 성취와 희열은 끊임없이 생기는 호기심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게 찾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이해를 더해가는 중에 있다. 물론 그것이 정말 내 삶에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이것을 위해서만이 내가 학업을 지속해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점점 길어지는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문득 유튜브에서 본 콜라츠 추측 (Collatz conjecture)은 숫자를 가지고 더하고 빼고 나눠보며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dZKr-Z2FO4
이 추측은 매우 간단하다. 어떠한 자연수가
1. 홀수라면, 3을 곱하고 1을 더한다. 2. 짝수라면, 2를 나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였을 때, 자연수는 모두 4-2-1 의 반복으로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바로 콜라츠 추측이다. 이렇게나 설명이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그러나 아직 인간이 완벽히 증명해내지 못한 추측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모든 자연수가 흐르고 흘러 4-2-1 의 루트로 돌아가는 모습을 가시화하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산호초 같아 보이기도 한다. (흔히 우리는 자연과 수학을 연결 지어 생각한다.) 수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완벽히 증명하기 위해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개념을 도입하기도 한다. 수학은 그 깊이가 깊어질수록 숫자는 적게 등장하지만 논리를 설명하기 위한 글은 길어지곤 한다. 자, 그렇다면 콜라츠 추측이 증명된다고 해서 이 세상이 달라질 수나 있을까?
수학 문제는 비단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난제들을 풀어내기 위해 새로운 개념이 고안되며, 이러한 개념은 새로운 시각을 만든다. 하나의 창이 더 생긴다고 할 수 있겠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파동이 흐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다 정립된 푸리에 분석(Fourier analysis)은 현대 전기통신의 근간이 되었고, 오래된 영화와 녹음을 깔끔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다른 예로 인류는 통계학을 고안하고 발전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공학의 모든 영역에서 통계학에 입각하여 결과를 예측한다. 복잡한 물리적 현상들이 얽히고설켜 도무지 알아낼 수 없다면 통계학적 접근을 통해 매우 직선적이며 가벼운 해답을 제공받을 수 있다. 자연계의 숫자 분포가 밴포드의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로 우리는 부정선거 등 숫자와 관련된 오류를 검열 할 수 있다. 컴퓨터를 처음 고안했던 것 역시 수학이 기초가 되었다. 이제는 그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며 우리에게 오히려 통찰력을 제공한다.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고자 할 때, 다른 개념을 대입하여 명확하게 이해되는 순간은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다. 수학 역시도 마찬가지 인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기 때문인진 몰라도) 수학은 대학에서도 대수/기하/해석학/확률론으로 분류하여 배운다. 마치 여러 나라처럼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수학 연구의 최전선에서 보면 이러한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우리가 동물들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동물들은 대개 같은 순서로 다리를 움직이며 명확한 패턴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떤 식으로 분해하여 연구해야 할까? 군론(Group theory)에 대한 문제일까? 역학에 대한 문제일까? 그 답은 당연히 둘 다 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둘 다 라는 것은 교집합에 대한 것도 아니다. 단지 전통적인 두 부분 사이에 걸쳐있는 새로운 영역일 뿐이다.
위대한 수학 문제들을 읽다 보면, 연구의 큰 진전은 차근차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세상이 오묘한 것은 학문과 비학문의 영역을 막론하고 어떠한 원리를 다른 영역에 어느정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 책에선 직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논리의 정점에 있는 수학이라는 학문에서 수학자들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논리가 아닌 갑작스럽고 엉뚱한 비약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해야 한다. 수학이 분류될 수 없는 것처럼 학문과 비학문의 경계 역시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른 것의 영감이 될 수 있다. 이 복잡한 세상을 공학자의 시선으로 이해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공학자의 관점을 전달하는 것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한다. 순수한 학문을 진지하게 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책을 마치 스낵처럼 읽어보며 어딘가가 일깨워지는 좋은 시간이었다.
“정리란 지적인 휴식처이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어딘가 명확한 곳에 다다랐음을 느낄 수 있다.”
– 영국의 수학자 크리스토퍼 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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