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홀리데이 홈”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 中)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2,971회 작성일 22-07-09 00:06

본문

이야기는 ‘장소령’이 선을 보러 나간 자리에서 ‘이진수’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속으로 장소령은 이진수를 보자마자 그를 군인이라고 했다. 선을 중개해준 사람이 알려준 것이 아니고, 군복이나 관등성명 없이도 군인처럼 보였다고 했다. 뜬금없지만 8년 전 훈련소 마지막 훈련 주에 접어들었을 때 조교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금 이 상태로 휴가 나가면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당시 내가 몸 담았었던 공군은 훈련소 6주를 수료하고 나면 2박 3일의 휴가를 주었다– 너희가 온 몸으로 나는 군인이요 하고 티내고 다닌다는 것을 너희만 모른다는, 그때는 와 닿지 않았던 말이. 어쨌든 그녀의 예상은 정확했다. 그는 이제 막 대위를 달고 들떠 있던 신임 장교였다. 2년 후, 그들은 결혼했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나 이진수는 소령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이진수는 결국 소령에서 군복을 벗어야 했다. 나도 너(장소령)처럼 평생 소령이라는 실없는 농담을 건네면서. 처음에는 아내에게는 전역하게 된 이유로 부대 내의 군납 비리에 가담했다가 들통나고 혼자서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고 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실 상관 폭행이 전역 이유였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 이후 취업에 실패한 이진수는 결국 대출을 낀 채로 고기집을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나 싶더니 육우를 한우로 속였던 사실이 적발되어 영업 정지 처분을 받는다. 그리고 식당을 처분하면서 근저당으로 잡혀 있던 아파트를 내놓게 되었고, 아파트를 보러 온 사람이 예전 자신의 대대에서 근무하던 병사였던 청년이었다는 걸 알게 된 이진수는 술 한 잔 기울이다 당시 그의 강압적인 태도와 폭력성을 은근슬쩍 꼬집는 청년을 외면한 채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소설에서의 이진수는 사실 군대 내에서도 소위 말하는 ‘적폐’에 가까운 인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렇게 동정이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 이야기가 나에게는 이진수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신문 기사에도 가끔 나오지만 [1], 군에 몸 담았다가 애매한 시기에 전역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에 굉장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본다. 20년 근속을 채우고 전역해 군인 연금이라도 받는다면 조금은 낫겠지만 (20년 근속부터는 군인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부사관들끼리 쓰는 은어로 20년 짬을 ‘연금 깨졌다’라고 한다), 그들 중 절반 정도는 20년을 채우기 전에 전역해야만 한다.


군대는 굉장히 특수하고,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이다. 그런 데에서 최소 10년 정도 몸 담게 되면 민간인의 것과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사람의 모든 것이 하나하나 변해간다. 이 글을 보는 군필자들은 전역하고도 한동안 누가 자신을 부르면 “병장…..아 네!” 라고 하던, 혹은 길가에서 차를 마주치면 자신도 모르게 거수 경례를 하던 (군대에서 차를 몬다는 것은 십중팔구 간부라는 뜻이고, 병사는 간부를 마주치면 무조건 경례해야 한다.) 자신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군인이 아니라도 취업난이 심각해진 요즈음에 직업 군인 재취업만을 위한 일자리 정책을 특별히 내놓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대안 마련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업자를 위한 복지의 사각 지대에 놓인 사람들.


40대에 구직 활동을 하지만 나이 제한 때문에 청년 구직자 혜택을 받기 힘들면서 기업에서도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 소설이 제대군인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제대 군인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복지의 사각 지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막혀서 사회 안전망에 감지되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다 사망한 채로 7개월 동안 방치된 어느 발달장애 아들을 둔 어머니의 비극 (흔히’ 방배동 모자’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2]). COVID-19의 여파로 사회복지사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것에 제약이 걸리면서 안 그래도 힘들던 발로 뛰는 복지는 더 힘들어졌다. [2] 정부 시스템과 민간 사업에서 끊임없이 이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대안을 생각해야 하겠지만, 그만큼이나 요즈음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소외된 이웃을 위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각박해진 현대 사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이제라도 사라져가는 사랑과, 생명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 말이다.

 

[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6041832091869 “나라 지킨 세월, 후회될 줄은..취업전선서 무너지는 제대군인”

[2] https://www.social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02 “방배동 모자 비극 누가 초래했나.. ’부양의무자 기준’에 숨막힌 참극”

[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22804430004320 “복지 사각지대 비극, 왜 되풀이되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