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차(茶)와 일상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2,826회 작성일 22-08-08 01:20

본문

“Morning routine”

한 때 SNS 상에서 유행했던 해시태그라고 한다. 지금도 종종 보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침마다 하는 습관, 정도 되겠다. 요새는 조금 뜸해진 감이 있지만, 내게도 꽤 오래된 Morning routine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아침에 커피를 내리거나 홍차를 우리는 것이다. 운 좋게(?) 타이밍 맞춰 오는 사람이 있으면 한 두 잔씩 나눠줄 수 있도록 양을 조절하기도 하고.


 “우려낸 차가 담긴 찻잔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맛있는 차를 즐길 수 있는 더없이 평범한 이 시간에 감사하는 아침이다.”
–
본문 中

이 에세이의 작가 역시 나와 비슷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보다 훨씬 더 특별한 ‘Morning routine’이 있다. 14년 째 매일 아침 ‘두 아이’와 차를 마시는 일상을 쌓아왔다고. 처음에는 자신에게 짧은 쉼표와 여유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매일의 차 생활이 하나의 의식처럼 일상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간이 쌓여 내 삶이 달라졌다면, 이제는 차를 마시는 그 잔잔하고 고요한 시간이 자신과 아이들의 삶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듯 하다고 한다.


차, 커피, 술 등의 음료는 그 맛의 다채로움과 무궁무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커피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커피를 ‘한 잔 안의 우주’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그리고 그 맛을 좌우하는 의외로 매우 커다란 변수로 마시는 사람의 ‘기분’이 있다. 아무리 맛있는 커피라도, 아무리 비싼 찻잎이라도 마시는 사람이 심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태라면 카누 인스턴트 커피와 그다지 맛이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차 한잔 해요.’ ‘커피 한 잔 해요’ 라는 문장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해 홍차 한 잔을 기분 좋게 비워 낼 여유를 내 줄 수 있겠어요? 라는 의미가 함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니 말이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일이다. (중략)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소소한 것 하나하나에 감사를 더하면
모든 것이 의미 있는 것으로 변한다
.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삶을 더 빛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 
본문 中

동일하게 내린 커피라도, 똑같은 찻잎으로 우린 차라도,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은 각별하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클린룸에 들어가거나 측정방에 들어가야 하는 날엔 어쩔 수 없지만, 운이 좋게 한 잔을 내려 마신 날에는 이상하게 그 날 하루 종일 더 집중이 잘 되거나 뭔가 떠오르는 빈도가 잦아지는 듯 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오늘도 이 잔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일요일이나 휴일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한 잔 하고 연구실 자리에 앉은 날은 훨씬 더 그렇다.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는 한다. '감사의 한 잔' 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하루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낸 후 살짝 출출해지는 오후의 이 시간, 
엄마가 내어준 따끈한 스콘과 밀크티 한 잔이 먼 훗날 아이들이 떠올릴 수 있는 마음 따스한 추억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 본문 中

아침의 한 잔이 감사라면, 오후의 차 한 잔은 잠시 쉬어가는, 휴식의 한 잔이 아닐까 싶다. 하루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낸 후 노곤해지기 좋은 시간. 점심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라면, 살짝 출출해질 만한 시간. 스콘 (비스킷의 일종. 홍차와 매우 잘 어울리기 때문에 유럽의 티타임에 꼭 들어가는 빵이다.)과 딸기쨈에 홍차 한 잔을 곁들이면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 '애프터눈 티'라는 단어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리라. 

이 책은 사실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티타임과 함께하는 자신의 일상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어놓고, 차 우리는 레시피를 소개하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하게 다가왔다. 교제중인 여자친구와 요새 결혼한 뒤의 일상을 자주 얘기하곤 하는데,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아이를 키우더라도 한 곳에는 육아와 상관없는, 부부만을 위한 티타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그맣게라도 만들어 놓자는 것이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커피 한 잔으로 서로의 하루를 응원하자는 그런 실없지만 기분좋은 이야기. 쉬는 날이면 근처에서 빵을 사오거나 아니면 직접 구워다가 아침에 차 한잔과 같이 곁들이자든지, 그래서 나중에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면 굳이 바깥에서 카페를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인테리어를 신경써서 하자느니, 어쩌면 너무 먼 얘기지만 기분좋은 이야기.

요새는 뜸했던 한 잔의 'Morning routine'을, 이 글을 쓴 직후에는 한동안 최대한 오래, 유지해 보아야 겠다는 실없는 결심이 섰다는 말로 이 실없는 글을 마무리하겠다.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런 오아시스같은 시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