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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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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3,021회 작성일 22-05-0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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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이 이야기는 세계의 혼돈에 맞서려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학장 이기도 한 그는 시간에 따라 혼돈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열역학 제 2법칙을 무시하듯 이 세계에 질서를 세우려고 한다. 결국에는 실패할 것이라는 듯이 자연은 그에게 끊임없는 시련을 준다. (예를 들면,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그가 수집하던 어종의 샘플 유리병은 대부분 깨져버린다.) 하지만 생명의 지도를 그려보려는 그의 노력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그는 어류학자였으며 분류학자였다.

 

그러한 그를 동경하는 한 과학 기자가 있다.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이렇게 묻는다. “인생의 의미가 뭐에요?” “의미는 없어!” 그녀의 아버지는 마치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온 것처럼 말했다. 아버지는 항상 그녀를 키울 때 이런 허무주의를 설파했다. 그러니 너 좋을 대로 살라고. 그녀의 아버지는 언제나 오토바이를 몰았고, 맥주를 달고 살았으며, 물이 보일 때마다 큰 배로 풍덩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허무주의적 사상은 오히려 아버지의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대범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그는 반세기 넘게 아침마다 어머니의 커피를 만들어주었고 자신의 학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는 무의미함을 직시했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갔다.

 

우리는 점위의 점위의 점일 뿐이다. 

–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

 

하지만 이런 아버지를 보고 인생의 무의미함을 일찍이 터득한 것이 그녀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고, 대학에서 만난 첫 남자친구와의 시간들로 인생에서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이란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여행지에서 어떤 여자에게 마음을 뺏겨 남자친구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인생에서 유일한 빛이었던 남자친구를 잃은 그녀에게 세상의 모든 혼돈에 맞서 아무도 관심이 없던 어류를 분류하는데 일생을 바쳤던 이 남자의 이야기는 멋진 무용담처럼 다가왔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녀도 혼란스러운 이 상황(본인의 성 정체성 조차 헷갈리는)을 이겨내고 빛이 발하는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말이다.

 

데이비드는 드넓은 물의 세계가 무한한 위안을, 그 어떤 술이나 약보다 훨씬 더 나은 위안을 준다고 확신했다. 이 우주에서 아직은 미지의 한 조각에 불과한 새로운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아나가고,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믿을 수 없는 도취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전능함에 대한 환상, 그 사랑스러운 질서의 감각.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 89 페이지 


‘명명’을 철학의 관점에서 훑어보면, 우리는 추상적인 개념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사랑, 죄, 정의, 무한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실제로는 존재하면서 인간이 발견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미지의 생물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물고기를 잡고 관찰하며 어류의 어떤 종에 속하는지 판단한 뒤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로서 비로소 그 생물이 존재하게 된다. 우주의 한 귀퉁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질서를 세우고 있을까? 질서라는 이름 하에 굳이 혼돈이라는 개념을 질서로 끌어들이는 것은 아닐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를 탐색하며, 그녀는 무수히 많은 역경들 속에서 그가 계속해서 이 일을 밀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를 찾고자 했다. 망해버린 사명을 딛고 일어서는 일은 그녀에게도 절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남긴 무수히 많은 자료 중 한 회고록에서 이상한 문장을 발견한다. 그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문장은 긍정적인 방향으로는 좋은 말 같아 보이지만 조금 바꿔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가졌었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그에 대해 더 추궁하기 시작한다. 사실 데이비드는 스탠퍼드를 세운 제인 스탠퍼드 부인과의 마찰로 그녀를 독살했다는 정황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은 절대 유전을 대체할 수 없다’ 라는 논리로 미국의 우생학을 강제적으로 시행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강제 불임화를 입법하는데 일조했으며 사회에 가장 취약한 집단을 몰살시킬 것을 촉구했다.

 

그녀는 역겨웠다. 자기가 모델로 삼으려던 사람이 이런 악당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그가 이런 사람이 되었던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작은 씨앗은 그의 스승이었던 루이 아가시가 심었다. 그가 설파했던 자연에는 사다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사실 그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데이비드는 자연의 질서에 대한 믿음을 한세월에 걸쳐 칼로 곱게 갈았고 과격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에 사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까마귀는 인간보다 기억력이 좋고, 침팬지는 인간보다 패턴인식 능력이 뛰어나다. 우리는 가장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계층구조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무리와 상당한 합리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의 일대기는 추잡했지만 그는 일평생 호위 호식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 받았고, 아주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고, 마지막 순간에 깨달음이나 회한 따위도 전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스탠포드 대학에는 그를 기리는 조던 홀이 있다. (물론 지금은 이 책이 이슈가 되어 학생들이 조던의 이름을 빼는 것에 대한 성명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배가 아프지만, 그를 놀릴 한가지 과학적 사실이 있다. 사실은 물고기,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생을 통해 바쳤던 어류는 종의 뿌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어류는 마치 3000 m 이상에서 사는 모든 생명체를 싸잡아 묶어 ‘산류’라고 이름 붙이고 그것이 종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유전학적,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소와 폐어 그리고 연어 중 연어가 가장 동떨어져 있다. 폐어와 소는 심장의 모양이 비슷하며 두 생물 모두 후두개를 가지고 있지만 연어는 그렇지 않다. 이렇듯 그가 질서를 잡으려 했던 어류는 결국 그 질서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으며,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질서를 바로잡고자 우생학을 실천했던 그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들을 지속해왔는지 더 극명하게 다가온다.

 

이러나저러나 데이비드에게 있어서 믿음은 (잘못되었더라도) 삶을 더 힘있게 나아간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데이비드를 탐색했던 그녀는 그를 경멸했음에도 어느 차원에서는 그녀 역시 그가 갈망한 것과 똑같은 것을 갈망했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 라는 아버지의 말에 반박했을 것 같은 데이비드가 부러웠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과 의미없이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점으로 시작해 점으로 끝나는 이 인생에서 혼란스러움을 이길 방법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말한 우주의 관점, 데이비드가 말한 우생학의 관점에서라면 한 사람의 생명은 그다지 소중해보이지 않는다. 금세 사라질 점위의 점위의 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관점이란 것 역시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어디서든 찾아야 한다. 작가는 이를 민들레 법칙이라고 부른다.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이지만, 약초 채집가에게는 약재가 되기도 하며 화가에게는 염료이다. 히피에게는 화관,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다. 이 이야기는 논리와 이성으로 똘똘 뭉친 과학적인 서적에 가까워보이지만 신기하게도 매우 감성적으로 읽혔다. 나를 더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에 집중하며 나에게 담긴 여러가지 의미를 생기있게 붙잡으며 나아가고 싶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던 작가의 큰 언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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