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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환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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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3,045회 작성일 22-06-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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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환한 날들

 

백수린

 

 “생각나는 것을 써보세요” 평생교육원에 신설된 수필쓰기 수업에서 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일흔을 넘은 ‘그녀’는 지금 생각나는 것이 딱히 없다. 그렇게 시간을 축내고 집에 가려는 찰나에 강사가 말한다. “오늘도 아무것도 안 쓰셨네요.”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사실 그녀는 수필쓰기 수업에 관심이 있어 듣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수업을 듣는 이유는 단지 수필쓰기 수업이 수요일 오후 3시에 열렸다는 이유에서 였다. 이전에는 생활 인터넷 수업, 건강 수지침 수업 같은 것을 듣다가 이번엔 실용적이진 않은 수필쓰기를 듣고있다. 굳이 수요일 세시 수업을 왜 듣냐고 말한다면 단지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일과를 정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떠난 후, 그리고 일하던 과일가게를 처분 한 뒤, 그녀는 자신의 일과를 아주 치밀하게 짜 놓았다. 매일 라디오를 듣는 시간에는 요일마다 다른 곳을 청소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월요일 오후엔 장을 보고, 화요일 오후엔 아쿠아로빅을 했다. 그리고 수요일 오후엔 평생교육원 수업을 듣는다. 그리곤 오후와 저녁 사이에는 따뜻한 결명자차를 내려 마셨고, 매일 밤 천변을 걷고 연속극을 봤다. 노년에 혼자라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이 모두 안쓰러워 하고 걱정했지만 그녀는 결코 이 생활을 싫어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마침내 찾아온 인생의 평화에 만족하고 있다. 평생 장사를 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왔던 그녀에게 여유로운 오후는 선물과 같다. 하지만 고요하고 평온한 이 분위기를 깨는 녀석이 하나 생겼다. 바로 앵무새다.

 

 

사흘 전 앵무새를 가져온 건 사위였다.

“오랜만에 장모님이 뵙고 싶어서요.”

명절도 아닌데 누군가 집에 찾아온 건 너무 오랜만이라 그녀는 허둥댔다.

(중략)

“그런데 그건 웬 앵무새인가?”

“아 이거요. 아이들이 크니까 자꾸 동물을 기르고 싶다 해서요.”

“그럴 때지, 인서도 어릴 때 학교 앞에서 병아리 사 와 닭이 될 때까지 기르고 그랬어.”

“장모님, 사실은 장모님께 이 앵무새를 좀 맡아 달라고 부탁하려고 왔어요. 한달만요.”

 


 좋아할 줄 알고 산 앵무새를 애들이 무서워해서 한달 간만 맡아 달라니. 게다가 혼자 적적할 테니 앵무새가 있으면 조금 괜찮을 거라는 사위의 눈치에 그녀는 기가 찼다. 조금 더 단호하게 거절 했어야 됐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그녀는 딸 인서를 생각해서라도 거절 할 수 없었다. 거절 하려던 찰나, 키우던 닭들을 다 어쨌냐며 울먹이던 어린 시절의 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딸이 그녀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 게 그 즈음 이었을 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둘의 사이는 틀어졌고, 앵무새를 맡기는 일 조차 사위를 시키는 딸 인서가 괜히 미울 뿐이었다. 그 앵무새는 잠시 있는것 만으로 그녀의 루틴을 모조리 뺏어간다. 연속극을 보려고 하면 앵무새는 TV 소리에 질 수 없다는 듯 고래고래 악을 썼다. 사위가 일러준 대로 사료를 담아주면 앵무새는 바로 그 그릇을 엎어버렸다. 새장 주변은 치워도 치워도 너저분했다.


 

앵무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건 금요일 이었다. 먹이를 줘도 도통 줄지가 않고 새장 안이 조용하다 싶었는데, 계속해서 졸기만 했다. 그녀는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중략)

“죄송하지만 그렇게 키우시면 안 돼요. 앵무새는 관심을 많이 필요로 하는 동물이에요. 하루에도 몇 번씩 새장 밖에 꺼내 주셔야 하고 놀아도 줘야해요. 안 그러면 외로워서 죽어요.”

그녀는 돋보기를 찾아 끼고 평생 교육원에서 배운 대로 인터넷에 앵무새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앵무새에 초점이 맞춰진 그녀의 일상은 모든 것이 고역이었다. 한시간 마다 새장을 열어 놀아주었고, 물도 자주 갈아주었다. 새의 변을 치우고 다니는 것도 고역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앵무새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앵무새가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 쓰다듬어 달라는 신호인 것을 알아채고는 더욱 그랬다. 앵무새는 그녀 배 위에서 자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앵무새와 함께하면 잊고있던 옛 기억들이 이상하리만치 자주 그녀를 찾아왔다. 앵무새를 데리고 천변에 나가 산책을 할 때면, 어린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 순간, 자기가 그 정도의 나이였을 때 백모에게 맡겨져 키워 졌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동네의 냄새, 9살이나 많던 사촌언니. 어떻게 이런것들을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을까.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시절은 모두 사라졌다. 어느 날은 천변을 따라 산책하다가 딸 뻘인 여자와 그녀의 딸이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을 보게된다. 이번에는 딸 인서가 그정도 나이였을 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과일가게 하루만 쉬고 운동회에 와줄 수 없냐는 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경비원과 핏대를 높여가며 싸우는 것을 본 인서가 창피하다 말할 때는 그녀도 너무 분해 딸의 뺨을 때렸다. 인서는 그녀에게 앵무새는 맡길지언정, 손주는 절대 단 한번도 맡기지 않았다. 아이를 매일 돌보고 옆에서 가까이 지내는 건 그녀가 아닌 시어머니였다.

 

 시간이 흘러 앵무새는 사위가 데리고 가버렸고 그녀는 일상을 되찾았다. 모든게 다시금 안정 되었지만 천변에만큼은 한동안 나가지 못했다. 천변의 모든 풍경이 그녀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앵무새와의 시간은 여름날의 추억이 되었고, 나뭇잎은 이제 시들어갔다. 눈이 오는 겨울밤, 서랍을 정리하다 그녀는 여름날의 수필쓰기 수업 노트를 발견한다. 적어내지 못했던 빈 노트를 펼친다.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라는 강사의 말이 불현듯 그녀의 머리를 스친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앵무새가 가버렸다. 라고 적는다.


 앵무새와 노인의 이야기는 너무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녀가 아이처럼 앵무새를 사랑하는 것에 나이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적어도 그 여름날엔, 그녀에게는 앵무새가 전부였고 앵무새에게도 그녀가 전부였다. 소중했던 대부분의 것(세월이든, 가족이든, 친구든)을 상실한 후 고요해진 그녀의 일상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다. 앵무새는 잊고 있던 감정들을 다시 싹트게 해주었고 아주 환하게 그녀를 비춰주었다. 


 만나고 사랑하다 상실하고 잊혀져 가는 여러 일들을 겪다보면,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것에 일단 벽을 쌓는다. 그리고 그것에 무감각해지려 노력한다. 사랑은 싹 트는 즉시, 양날을 가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이 아닌 이상 그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니라 부정하여도 기어코 눈길이 가는 것도 바로 사랑이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아주 환한 햇살을 굳이 벽으로 가리고 싶지 않다. 벽에 가로막혀 사랑의 눈길이 닿지 못하는 것도 싫다. 어린 아이처럼 허물없이, 망설임보단 설렘으로, 끝의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사랑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그 시절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리라.

 


그녀와 같이 연속극을 보며 그녀의 목에 보드라운 부리를 비비던 앵무새, 화초에 물을 주기 위해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아 걸어가면 그 뒤를 총총총 따라오던 작은 새. 사람들은 알까. 잠에 들면 앵무새의 그 조그마한 발이 더 따뜻해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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