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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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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승현
댓글 0건 조회 2,707회 작성일 22-07-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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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최근 몇 년간 언론들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여론은 극에 달했다. 2014년 4월 16일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세월호 침몰 당시, 언론들은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부터 시작해 현장에 있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았고,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기까지 했다. ‘세월호’로 촉발된 ‘이게 나라냐’에 대한 외침과 시위 그리고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무보도’로 일관했다. 결국 박근혜 정권의 결말인 국정농단 사태 당시 촛불 시위 현장에서 MBC기자들은 ‘박근혜’ 정부 당시 보여준 행보로 인해 시민들에게 엄청난 조롱과 비아냥을 받았고 급기야 너무 상황이 심각해 현장보도가 불가능하자 MBC 마크를 떼고 나서야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높은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기사를 작성하고, 앞다투어 세대와 성별을 갈라치는 기사들을 쏟아내는 모습은 마치 그들이 세상을 주도하는 듯한 위협을 느끼게 만든다. 이렇듯, 언론사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들의 그릇된 행보에 많은 시민들이 신뢰를 잃고 분노하는 현실에서, 한국언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돌이켜보며 끝없이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


‘한국 언론 바로보기 100년’이라는 책을 통해 근본적으로 한국의 언론이 과연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어떤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 한국의 언론사라는 집단이 생겨났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신문이 생겨난 이후로, 신문을 통해 기자들은 그 시대의 모습과 생각을 기록했다. 이는 언론은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근 현대사에서 언론은 우리의 역사를 전해준 하나의 기록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언론과 근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사실은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끝이 비약하고, 실패로 이어지는 결말이 대다수지만, 탄압과 권력의 공포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투쟁한 ‘언론인’들이 존재한다는 역사가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논설, ‘손기정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조선중앙일보>, 4.19 혁명을 이끌었던 반체제 신문들, 군사 정권 시절 ‘언론 수호 선언’과 뒤 이은 ‘자유 언론 실천 선언’까지. 물론, 한국 언론을 망치게 한 부류들도 존재했지만,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저항했던 기자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그들과 싸워준 시민들이다. ‘신문의 힘’으로 4.19혁명이 촉발된 것은 사실이지만, 혁명을 주도 한 것은 일반 평범한 시민들이였다. 또한 동아일보의 ‘자유 언론 실천 선언’이후, 중앙 정부의 압력으로 광고주들의 광고 철회가 이어지자, 일반 시민들은 성금을 모으고, 동아일보를 지지 하는 의사를 표현했으며, 동아일보 지면에 ‘의견 광고’를 실어주는 등 <동아일보>를 응원하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6월 항쟁과, 촛불시위 사태까지 언론의 역할도 분명 존재하지만, 시민들의 지지와 행보가 없었다면, 지금의 민주적 역사가 만들어 질 수 없었고, 언론의 자유도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읽기 힘들었던 구간은 ‘폭력’으로 일삼은 탄압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승만 정권 시기 ‘자유당’에서 자신들의 반하는 언론에 행해졌던 테러와 폭력은 분명, 언론인들이 활동하는데 가장 두렵고 든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과 언론인들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였다. 과연, 나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는 투쟁의 역사를 마주할 때, 누구나 드는 어쩌면 가장 흔한 생각이지만, 가장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반증같은 생각이기도 한다. 그 만큼 권력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언론인들의 투쟁의 역사가 있다는 것은, 반대로 탄압을 하고 언론을 손으로 주물려고 했던, 그리고 순응하고자 했던 세력과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는 민중의 대표 신문 이었던 <동아일보>를 ‘재정’을 통해 길들이기 시작한다. <동아일보>가 여러 번의 정간을 통해서 재정적으로 힘들어 지고, 일본 기업의 ‘광고’로 회사가 운영되자, 그들은 총독부의 손에 놀아 날 수밖에 없었고, 중일전쟁시기에는 스스로 일제에 순응하고 민중들의 인고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일본과의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생일까지 축복하는 기사로 지면을 장식하기 까지 이른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행보는 그 후에 있을 역사적 순간에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보여주는 ‘과거’지만, ‘미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군정의 통치 이후, 우리나라는 일제당시 친일파들의 숙청을 해결하지 못했고, 남북이 갈라지고, ‘이데올로기’의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어떠한 건국이념도 없이 나라를 건설했다. 이승만 정권 당시 ‘한민당’의 태도는 현재의 보수주의 태도를 만드는 토대가 되어, 아직까지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이 보여준 ‘재정적 압력’을 통해 언론이 스스로 순응하도록 만들고, ‘미군정’ 당시 자신들을 비방하는 언론에게 보여준 ‘엄벌주의’와 언론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만들기 위한 ‘법 제정’은 그 후 군사정권이 언론을 향해 보이는 탄압과 정책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언론을 대한 과거의 행태를 통해 어떻게 군사 정권이 언론을 잡고 알아서 기도록 했는지 나는 이해 할 수 있었다.


현대 언론이 비판을 받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 특정 '정치계'와 ‘대기업’에 우호적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유통시킨 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정치인과 대기업의 행보를 지지하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기사의 논조를 쓰는가는, 군사 정권 시절 ‘언론사’와의 ‘권언 복합체 형성’에 있을 것이다. ‘신동아 사건’이 국회에서 거론 될 때 편협 회장 최석채는 ‘...한마디로 말하면 신문이 편집인과 기자의 손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정치인과 경영주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이미 이때부터, 언론은 상당히 기업화가 되어갔다. 박 정권은 ‘차관’을 이용해 언론계에 특혜를 주었다. 언론통제와 외압은 갈수록 심해졌으나 반대로, 언론계는 시설 증축과 투자, 근대화 붐이 일어났다. 결국 언론 기관은 기업화가 되어 가면서 보도의 진실보다는 기업과 같이 자신보다 신분이 위인 상사에게 영합하며 언론인의 사명감보다는 직무를 기계적으로 하면 족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언론사의 입장과 성격에 따라 다른 생각을 쓸 수 있다는 풍토가 생긴 것이다. 결국 근대화는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촉진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렇게 돈을 통해 거대해진, 자신부터 ‘대기업’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언론사에서 과연 우리는 경제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요즘 기사를 보면 ‘살기 힘든 대한민국, 왜 그러나?’에 대한 내용을 담긴 기사들이 주류신문에 매일같이 나오고 있다. 물론 지금 경제가 어렵고, 팍팍한 현실을 기사로 다루어 대한민국의 현실을 담은 노력은 가상하나, 기사를 읽어보면, ‘대기업’ 경제체제로 인한 양극화나 근본적이 대한민국의 사회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최저 임금 인상’,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제시하며 기득권들의 입장에서 비판하기 바쁘다. 한국의 언론들은 이미 ‘기업화’가 되어있고 지배구조가 대부분 재벌에 종속 되어 있다. 그들에게선 우리의 입장을 대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언론이 중요한 이유는 여론을 형성하고, 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을 전달하는 데 의미가 있는데, 지금 언론은 ‘대기업’의 대변하는 입장에 있으니 우리의 삶이 나아 질수가 없다.


하나 더, ‘무보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5.18 당시에 광주를 표현한 <조선일보>의 행태는 가히 끔찍했다.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보도지침’을 통해 통제를 일상화 했고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도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보도하였다. 재야나 학생운동 같은 것은 오히려 크게 보도하여 재야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학생들의 운동은 ‘폭력성’을 강조하라고 지침 하였다. 자신들의 불리한 보도는 축소보도를 하거나, ‘보도 불가’를 내려 불가, 절대 불가,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불가 등으로 구분하기 까지 했다.

안타까운 점은,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보도’의 행태가 언론계에 자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백남기 농민 사건’ 당시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 거의 보도를 하지 않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언론에서 들을 수 없었으며 그 당시 ‘세월호’에 대한 뉴스를 다루는데 있어서 ‘보도지침’이 있었다는 전 KBS 보도국장인 ‘김시곤’의 폭로도 있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있을 법한 일들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언론은 과연 과거에 비해 달라졌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겉으로는 언론의 자유와 함께 다양한 이야기들이 기술의 발전을 통해 유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방식과 시대만 달라졌을 뿐 ‘유신 정권’아래 자행되었던 언론 탄압과, 관언 복합체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복잡하고 새로운 시대에서 언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선, 기사를 읽을 때 이 기사의 깊은 메시지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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