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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례사 - 김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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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746회 작성일 22-07-0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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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례사

김재용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무게가 나의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 정호승, 내 등의 짐 -


  남편, 내 편이 아닌 남의 편인 내 남자. 다른 여자에겐 친절하고 매너 있고 잘 웃기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아내에게는 무뚝뚝하고 뭘 부탁하면 귀찮아하고 사람들 앞에서 핀잔을 주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들이 이런 풀이를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남편도 연애할 때는 그렇지 않았죠. 갑자기 복숭아가 먹고 싶다면 일단 마트를 다 뒤져보고 그래도 없으면 황도 통조림이라도 사 들고 달려왔던 사람. 새로 산 구두 때문에 다리가 아프다면, 자기 등에 업히라면서 등도 기꺼이 내주었던 사람. 그랬던 남자가 결혼하고서는 남의 편이 되어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여러 서적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결혼한 남자들의 조언에 귀를 담아듣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논어에서 말했던 것처럼, 진정으로 행복한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부부관계에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소통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아내의 입장에서 경험해본 결혼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와 어머니의 삶을 경험해본 김재용 작가의 '엄마의 주례사'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김재용 작가에게는 딸이 있는데, 딸은 작가에게 "엄만 정말 행복하게 사는 거 같아. 나도 결혼하면 엄마처럼 살 거야"라는 말을 했답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참 행복하겠죠. 저자도 이 말에 힘입어 40년 결혼 생활하면서 겪은 남편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시집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렸고, 결혼을 앞둔 사랑에 서툴고 결혼이 낯선 딸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조언과 당부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요. 서문에서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결혼 생활은 누구를 만나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요. 


  '엄마의 주례사'의 첫 번째 챕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책상이었습니다. 아직은 남편의 가장 역활과 아내의 안주인 역할이 구분되던 시절, 남편의 늦은 귀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지루한 인생을 견디지 못한 작가는 남편에게 자신이 사용할 책상을 하나 사달라 부탁합니다. 눈물겨운 설득으로 얻어낸 자기만의 책상 하나. 그 책상 위에서 작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남편의 앞길만 바라보는 삶이 아닌 글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길을 바라보는 법을 터득합니다. 우리 혼자여서 외로울 때 결혼하고 싶어지지만, 사실 결혼하면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외로움이 배가 된다지요. 외로움을 스스로 극복할 줄 모르고 오롯이 상대방에게 외로움을 의존한다면 결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기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외로움은 남이 채워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채워야 견딜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작가는 부부가 이심동체가 아닌 이심이체(二心異體)의 삶, 불완전한 반쪽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선대칭도형처럼 각자 독립적인 상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두 번째 챕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파였습니다. 거실 한 가운데를 차지한 낡고 구멍 난 가죽 소파. 작가는 소파에 잘 앉지 않았기 때문에, 소파는 늘 남편의 차지였습니다. 낡은 소파의 손 걸이에 난 구멍을 수선하던 작가는 문뜩 소파의 구멍을 통해 남편의 고단한 삶을 깨닫는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언제부턴가 늘 기운이 없어 소파에 누워만 있던 남편. 나이가 들어가면서 넓은 이마가 허전해지는 남편과 낡고 헤진 소파가 겹쳐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가 자신은 늘 갱년기가 와서 잠도 안 오고 미치겠다고 남편에게 투덜거렸지만, 정작 남편도 똑같이 나이 들고 아파지는 모습을 보며 작가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 동병상련보다 더 좋은 말이 또 있을까요? 나만 아픈 게 아니라 너도 나처럼 아프구나라고 생각하면 웬만한 건 이해하게 된다죠. 작가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없는 부부는 자신의 아픔만을 주장하다 서로에게 상처만 더 한다고 말합니다.


  세 번째 챕터의 키워드는 농사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을 키우는 일을 자식 농사로 부르죠.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며 작물을 기르면 수확 철이 왔을 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라죠.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농사에는 일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겁니다. 논에 비를 내려 물을 주는 일에도, 적당한 바람으로 먼지를 불어주는 일에도, 따스한 햇살로 작물을 비추는 일에도 농부의 역할은 없습니다. 자식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내 욕심으로 아이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관심은 갖되 간섭은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자라나도록 기다리고 지켜주는 겁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식 농사보다 중요한 것이 부부 농사라고 말합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성향을 억지로 고치려 하거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요. 다만 자식은 알게 모르게 부모를 보면서 배우고 닮아간다는 걸 잊지 않고 잘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자식 농사든 부부 농사든 모든 농사는 절대로 조급하면 안 됩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싹이 빨리 안 나온다고 땅을 자꾸 파보면 나중에 거둘 게 없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안달하다 보면 나중에 거둘 게 없는 법입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라죠. 하지만 채워질 것을 알지 못하고 비워질 것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인생이 고달파지는 것 같습니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변화 앞에 청년은 많은 것을 비워야 합니다. 친구 관계가 좁아지고, 여가 시간이 줄어들고, 삶의 자유가 제한되겠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설렘조차 비워지고 작고 큰일로 다투는 일이 반복되는 일상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청춘의 시간이 떠난 자리에 편안함이 들어갈 겁니다. 인생이 허무로 비워질 무렵 충만함도 들어서겠죠. 생명력이 사라진 곳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지지고 볶고 싸워도 부부는 서로가 비워놓은 자리를 채워줍니다. 아무리 미운 상대라 해도 그 사람의 빈자리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면, 결국 둘이 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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