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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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김영하
언제인지 모르는 꽤나 먼 미래, 인간은 휴머노이드와(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는 로봇) 공존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휴머노이드는 육안으로는 구별되지 않는 수준까지 왔다. 외형뿐만 아니라,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상처가 나면 피가 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름도 생기고 노화가 일어난다. 주인공 철이는 이러한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휴먼매터스’라는 유명 IT 기업의 연구단지 내에서 부족함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어느 날 철이는 아빠를 마중 나가는 길에 정부의 휴머노이드에게 붙잡혀 미등록 휴머노이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은 휴머노이드들의 연옥이었다. 서로 증오하고, 싸우고, 죽이는 그런 곳.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로봇인 척해야 했다. 처음엔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그들을 흉내냈지만, 점차 철이는 그들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미 많은 인간이 뇌에 칩을 박아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잘린 팔다리 대신 인공 수족을 장착하여 높은 곳에 쉽게 뛰어오르거나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고 있다.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기기로 교체한 사람들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그리는 미래사회는 로봇과 인간이 육안으로는 구분을 할 수가 없다. 흔히 말하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나 감정 같은 것들 또한 휴머노이드에 내재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 휴머노이드와 인간을 구분지을 수 있는 기준일까?
그 기준으로서 실수와 어리석음이 있다. 기계는 실수하지 않는다. 기계는 당연하게도 프로그램이 된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인공지능으로 학습하더라도 큰 틀이 정해져있으며, 계산된 범위 안에서 행동한다. 즉, 정해진 답지에만 의존한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과 이성이 판단에 개입한다. 따라서 실수를 하고, 계산된 범위 밖의 행동을 하며, 또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되곤 한다. 그것을 증명하듯 소설의 후반부에는 인간은 모두 사라지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머노이드만이 남았을 때, 비로소 세상은 변화를 멈추며 종말을 맞이하고 소설은 마무리된다.
필멸의 존재라는 점 또한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구분 짓는 점이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인간만이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 사후 세계에 대해 상상하며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소설 속 휴머노이드 또한 죽음을 두려워한다. 좀 더 명확히 말하면 생체 에너지가 부족해 동작을 멈추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휴머노이드는 충분한 기술과 인프라만 존재하면 부활할 수 있다. 반대로 인간에게 부활이란 없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 뿐이기에 인간은 모든 것이 절실하다. 또한 삶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있기에 절실한 만큼 삶에 재미도, 감동도, 감흥도 있는 것이다.
가끔은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발견하며 차라리 기계처럼 되었으면 할 때가 있다. 나의 실수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나와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때, 과거를 후회하며 미래를 걱정할 때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실수와 어리석음은 곧 나의 발전의 원동력이었음을 기억하고, 필멸의 존재이기에 과거와 미래에 얽메이기 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함을 다시금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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