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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_김영하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다음 달에 써야 할 독후감을 위한 책을 고르곤 한다. 시간에 쫓길 때는 급하게 e-book에서 찾고 여유가 있을 때는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한두페이지 읽어보고 구매한다. 요새 E-Book이 활성화가 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핸드폰으로 간단히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책을 넘기는 느낌이 좋아 책을 빌려서 읽는다. 종종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지만 생각보다 비싼 책의 가격으로 당황한 적이 있다.
종이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는 판에 책은 왜 더 싸지는 것일까. 스위스 명품 시계 회사 사장의 인터뷰에 힌트가 있다. 당신네 회사 시계는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묻는 기자에게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필요가 없으니까요”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부연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값이 떨어집니다. 많은 회사들이 뛰어들어 서로 경쟁하며 값싸게 생산할 방법을 결국 찾아내거든요. 저희가 만드는 시계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아닙니다. 그러니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산문집 <보다>에 수록된<책의 미래> 속 한 구절이다. 그렇다면 책은 갈수록 저렴해지는 것을 보아 필수품이다. 나는 한두 페이지의 독후감을 쓸 때 족히 하루는 걸린다. A4 한두 페이지를 쓰는 것조차 힘든데 수백 장의 책 한권이 나오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였는지 추산조차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간과 노력을 돈으로 환산하면 책의 가격이 되는데 이는 터무니없이 값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가격도 비싸다 생각하며 더 저렴해지길 바라고 있다. 왜 다른 것에 비해 책은 비싸다고 생각했을까?
책은 무형의 가치를 종이로 표현한 것으로 그 가치만큼의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지 못하거나 읽고 나서 그만큼의 가치를 갖지 못할 때 비싸다고 생각하곤 한다. 책을 어렵지만, 독후감을 쓰기 편한 책이 있고 쉽지만, 독후감을 쓰기 힘든 책이 있다. 독후감은 나의 생각이 듬뿍 담긴 문장의 모음으로 책을 읽고 생각할 포인트를 통해 책이 가지고 있는 무형의 가치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면 나의 생각을 쓰기 편했다.
세상은 몇 배속 더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고 있으며 수많은 정보와 영상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게 된다. 독후감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어떠한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흘러가듯 읽다 보면 분명 책 한 권을 읽었지만 머릿속에 남은 것들은 없었다. 책 속의 무형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 가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 혹은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필사를 한다. 처음에는 하이라이트도 해보고 포스트잇으로 표시도 해보았지만 결국 독후감을 쓸 때 보게 되는 것은 필사한 문장이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데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다.’
책을 떠나 넓은 세상 속에서 무엇을 보고, 읽고, 말하면서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다양한 책을 통해 밑밥을 깔아줬던 이유인지 조금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지금의 나의 모습에 체념과 좌절보다는 희망과 긍정적인 사고를 정착하려고 노력하며 세상을 보고 말하고 부족한 부분은 책으로 교양도 쌓으며, 물질적 성장보다는 내면의 내실화를 추구한다.
‘보다’는 실제 쏟아져 내리는 정보들을 본다는 의미보다 확장되어 실제 담긴 가치를 파악하는 것의 의미를 가진다. 오직 보고 듣기만 하는 수동적인 언어보다는 말하고 쓰면서 소통을 하면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입체적인 의미의 ‘보다’가 되어야 한다. 생각이 머문다는 것은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답을 찾아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 간의 소통, 즉 입체적인 의미의보다’를 통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찾아지게 될 때가 있다. 그리하여 릴케는 젊은 시인들에게 질문 자체를 사랑해보라고 충고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 안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인내하십시오
질문 자체를 사랑해 보도록 노력하십시오
지금 대답을 찾지 마십시오
대답이 지금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대답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지금 당신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을 품고 살다 보면
당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이 그렇게 찾았던 대답이
어느날 당신안에서 발견될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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