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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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능력주의
- 박권일
한달에 하루쯤은 일을 잊고 자유롭게 원하는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연구비를 써가며 정말 중요하다고 본인도 선뜻 자신하지 못하는 실험을 한다. 그리곤 대단한 발견이나 성과가 없더라도 월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것 역시 부끄럽지만 축복이다. 학위를 마치고 들어갈 회사가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 내가 먹고 살 걱정보다는 부리고 싶은 사치를 소소하게나마 부려보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런 세속적인 얘기를 굳이 하는 것은 내가 다시 한번 감사함으로 충만하여 열심히 살아보기 위함도 아니며, 내가 이 정도의 삶에 만족하고 욕심 부리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더 높은 곳에서 삶을 영위하길 원한다. (물론 그것이 세속적인 카테고리는 아니다.) 이는 단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되새기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는 잔인하게도 본인보다 위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서는 불평등을 느끼지만, 본인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멸시하면서 그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치부해버린다.
우리나라는 흔히 선진국이라고 생각되는 OECD 국가 중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불평등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은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에 비해 그것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불평등에 우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평등’한 것은 참는데 반해 ‘불공정’한 것은 참지 못한다. 다시 정확히 꼬집어 말하자면, 불평등은 적극적으로 존속되길 원하며, 그 특권층으로 접근할 ‘기회의 불평등’에 매우 분노하고 있다.
최순실 사태가 아주 시끄러웠을 당시 이화여대 학생이 쓴 대자보는 단지 불공정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공정’이라는 게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글쓴이는 “우리가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샐 때 너는 어디서 뭘 했을까?”라고 묻는다. 글쓴이 본인은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글쓴이처럼 출세를 위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중앙도서관에서 밤을 새고 싶은 사람도 너무나도 많다. 이처럼 우리는 나보다 환경적으로 안좋은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다. 단지 이 전쟁에서 살아남아 ‘잡아 먹히는 쪽’이 아닌, ‘잡아 먹는 쪽’으로 가기 위해 치열하게 스펙과 인맥을 쌓을 뿐이다.
능력주의는 오랫동안 한국에 뿌리내린 이데올로기다. 능력주의는 자본주의에 앞서간 선진국들이 겪고있는 문제들이지만, 유독 한국만 이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GDP 가 아무리 성장해도 우리 사회는 세속 합리성은 강하되 자기 표현 가치는 매우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 성장, 사회질서 유지, 안보에 집착하면서도 사회적 신뢰는 지나치게 적은 사회인 것이다. 보통 잘살게 되면 사회의 관대함도 같이 증가하는데 한국 사회는 아무리 경제 수준이 올라가도 사회적 신뢰나 관용이 나아지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의 경제성장이 급격히 이뤄졌다는 것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어떠한 계급에 대한 성숙한 인식이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비교적 긴 기간에 걸쳐 노동 계급 문화가 형성된 서구 사회와는 달리, 한국에는 노동자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있더라도 그렇게 뿌리깊게 자리하지 못했다. 유독 한국에서 직업의 귀천을 지나치게 따지는 모습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행태다.
능력주의가 무서운 점은,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다지 문제여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에 있다. 이는 마치 ‘학력주의’라는 나쁜 뉘앙스의 말을 반대말인 ‘능력주의’가 구원해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학력은 ‘진정한 능력’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부정하면서도 실제 현실에서는 학력을 능력의 지표로 명백히 인정해왔다는 점은 능력주의와 학력주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능력주의가 팽배해진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불행해졌다. 10대들은 역대 최악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고, 그 부모님들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능력주의는 계속해서 불평등을 재생산해내고 있으며 사회의 가치를 획일화 시켰다. 서울대와 강남 아파트로 말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출세 따위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스스로를 특권화 하고자 한다. 출세한 자들을 이유없이 비난하고, 부자에게 인색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 사회의 또다른 문제다.
이 책은 아쉽게도 사회 행태를 이해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깊고 자세히 서술 되어있지만,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측면에서는 많은 논의가 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그것 역시 당연하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답은 애초에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 문제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작지만 확실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개인의 변화들이 모여 사회에 목소리가 닿고, 그로 인해 사회가 더 성숙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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