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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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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2,834회 작성일 22-05-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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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어머니께 전화하세요 ”

-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대상作 「초파리 돌보기」를 읽고 -


이 글을 읽기보다는 우선, 옆에 있는 휴대폰을 들고 주소록에 들어가 검색하세요.

‘엄마’, ‘어머니’, 또는 그 어떤 명칭으로.

아마 당신의 주소록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아닌 호칭으로 저장되어 있을 그 사람에게. 아마 최근 통화 목록 저 아래에 머물고 있을 그 사람에게 전화하세요.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릴,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그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 주세요.

10분, 5분, 아니 1분의 시간조차 되지 않더라도 그 짧은 순간은 우리가 읽는 어떠한 책들보다, 우리가 듣는 어떠한 격언보다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겁니다.

 

 2022년 제13회 젊은작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임솔아 작가의 「초파리 돌보기」는, 작가인 딸을 가진 중년 여성 ‘이원영’ 의 삶을 주인공 삼는다. 젊었을 때부터 생계를 위해 가발공장, 마트캐셔, 학교 급식실 조리원, 볼펜 부품 조립 등 쉬지 않고 일해왔던 원영은 결혼 후 가정의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쉬지 않고 일해왔다. 그럼에도 원영이 텔레마케터 회사에 취직했을 때에는 그저 ‘오십대 무경력 주부’로 분류될 뿐이었다. 고객들에게 수 없이 많은 욕을 들어가며 일을 하던 원영은, 같이 일하던 동료 미선의 소개로 KAIST 생명과학 실험동 연구실에서 ‘초파리 양육 및 선별’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남들은 징그럽고 볼품없는 허드렛일이라 여겼지만, 원영은 자신이 키우고 선별한 초파리가 외국 유명 연구소에 수출되고 혁신적인 연구 성과에 사용되는 것을 보며 자신만의 일을 가진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느샌가 원영은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며 몸은 쇠하고, 머리카락은 빠지게 되었다. 수 없는 정밀검진으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다 보니 그의 딸 지유는 그저 ‘오십대 여성이 겪는 지독한 갱년기 증상’ 정도로만 여겨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유는 환갑이 다 된 엄마 원영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고자 원영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유의 의도대로 엄마 원영이 실험동에서 일하면서 미상의 약품이나 환경에 노출되어 지금의 병을 얻었다 생각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하지만 원영은 자신의 실험동 일을 자랑스러워 하며 지유의 예상과는 다른, 원영 스스로가 생각하는 병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지유는 점차 자신의 어머니 원영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왔는지 이해한다. 결국 과거 원영이 양육하고 선별한 초파리들의 연구를 통해 개발된 로얄젤리를 약으로 먹어 점차 몸의 면역력이 돌아오게 되고, 지유 또한 소설의 마무리를 비극이 아닌 ‘해피엔드’로 끝마치게 된다.

 

 다소 복잡한 현실/소설간의 교차적인 인물 설정과 서술 시점의 이동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엔 집중이 필요하지만, 결국 이 소설은 ‘우리 세대의 어머니의 삶’에 대한 돌아봄을 주제로 한다. 항상 가족의 뒤를 챙기는 ‘어머니’라는 무거운 이름 뒤에서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신만의 꿈과 자신만의 일에 목 마르고 간절해 있었을 것이다.

 

 

텔레마케팅 사무실에서 헤드셋 너머로 종일 욕설을 듣는 여자 이야기,

평생 자기 책상을 가져보지 못해서 아프기 시작한 여자 이야기,

식기세척기를 구입하면 어떻겠냐고 물으면서도 책상이 필요하지 않느냐고는 한 번도 묻지 않는 가족 이야기,

밀가루가 체질에 맞지 않아 늘 위무력증에 시달렸지만 남편이 국수를 좋아해서 삼십 년 동안 국수를 먹은 여자 이야기,

체할 때마다 그러게 왜 국수를 먹느냐고 다그치던 딸 이야기,

그러면서도 일요일 저녁이면 “와,국수다” 라며 손뼉을 치던 딸 이야기 ...

 

 원영은 조금씩 이야기를 바꾸어가며 말했다. 거의 소설이 되어갔다. 원영은 너무 사소해서 오히려 무시했던 일화들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지어내다시피 한 이야기지만 속이 후련했다.                                               ...「초파리 돌보기」 중에서...

 

 원영의 원인 모를 병을 실험동 탓으로 여기며 이를 소설로 완성하고자 실험동에서 미심쩍었던 일들을 고집스럽게 요구하는 딸 지유에게, 엄마 원영이 해준 이야기들은 오히려 자신이 사랑했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역설적으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남에게 헌신한 일들이 몸과 마음의 병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보면 지유의 행동과 원영의 말은, 우리와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성공이 아닌 어머니 자신만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가 나를 만나기 이전에 사랑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키며 따라오던 어머니는, 이 길을 따라오기 위해 기꺼이 포기해야만 했던, 당신이 힘차게 달리고 싶으셨던 그 길은 어디였을까.

 

 다시 휴대폰을 들고, 다시 그 명칭을 검색하여, 이제는 그 이름을 고쳐주세요.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나의 어머니가 되어 주는 그 이름을 이렇게나마 마음을 담아 불러주세요. 이미 자신의 이름을 내려놓고 평생을 당신의 ‘어머니’로 살아가리라 다짐한 그 사람은, 우리가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더없이 큰 삶의 행복을 가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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