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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 김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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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829회 작성일 22-05-04 10:35

본문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김경진


밤이 샐 때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더라도

기어코 출발을 감행하는 것,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어디에 어느 시간에 있든 상관하지 않고 

폭주하는 차처럼 속도를 높이는 것,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고

목이 말라도 거침 없이 

너에게 가야 직성이 풀리는 것

나에게 사랑이란 이처럼 단순하다

- 사랑이 단순해야지 -



  명약관화,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하다는 뜻인데요. 이 '뻔하다', '빤하다'라는 말은 그 어원이 빛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가 환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분명하다는 뜻이죠. 여기에 뻔이 하나 더 붙어 뻔뻔하다가 되면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다는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이런 단어들을 보다 보면 우리말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달에는 김경진 작가의 신작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를 읽어보았습니다.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는 시이면서 에세이인 것 같은, 에세이면서 시 같은, 시와 에세이의 경계에 서서 장르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경진 작가는 이십 대의 나이에 '시문학'과 '월간문학'에서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서 이십여 년간 시의 주변을 배회하며 사는 작가입니다. 김경진 작가는 '누가 읽다 보니 내용이 뻔한데?'라고 묻는다면 뻔뻔하게 '에세이 시는 뻔하다'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논리와 인과는 철학이나 소설에서 찾을 일이고, 에세이나 시가 주는 감정적 안정감이나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복잡하거나 난해하며 안되고 편해야 한다구요.


  저는 이 책에 읽는 글들을 읽으면서 이 말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그의 글은 읽고 감상하기에 편안한데요, 하지만 막상 그 표현은 뻔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점이 이 작가의 매력이 아닐가 싶네요. 본문에 있던 에세이 시 중 인상이 깊었던 글을 몇 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발부리에 밟혀도 다시 고개를 드는 작은 풀잎이라고

임무를 마치지 못한 채 비바람에 떨어진 꽃잎이라고

이름이 없을 것인가.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계곡의 물소리라고

포말로 사라지고 마는 잔파도 소리라고

자기의 메아리를 갖지 않았겠는가


가벼운 숨소리 한 번만으로도

얼핏 비치는 자잘한 미소만으로도

나에게는 너의 이름이 살아가는 전부의

의미라는 걸 돌려 말해본다


너를 향해 날마다 부동자세가 되어 이름을 부르면서

어떤 순간이 맛깔스럽지 않을 것인가.


내 가슴을 향해 피고 있는 부용화 같은

너의 이름을 부르고 불러줄게.

-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


  사랑이라는 단어 한번 사용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고 그를 향한 절절한 마음이 피어나는 글입니다. 자연 속에 이름 없는 꽃이 없고 소리 없는 현상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이의 작은 움직임에도 애정과 의미가 담겨있음을, 그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음미하는 이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섬세한 아름다움이라는 부용화의 꽃말을 생각한다면, '부용화 같은 너의 이름을 부르고 불러줄게'라는 구절이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려야 할지라도 꺾이지는 말자 

삭정이는 부러질지라도 물이 올라있는 가지는 끝까지 지켜내자

단단한 뿌리로 견고하게 줄기를 지탱하자

아무리 혹독해도 겨울은 지나간다


해독하기 난해한 음해를 감당해야

이파리를 틔울 봄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다

잔바람은 몸으로 막고 된바람은 흘려내면서

지금은 다만 견뎌내야 할 때다

시련을 맞아야 할수록 단호해지자

- 나무에게 -


  이 겨울을 견디는 나무 같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글입니다. '비 온 뒤에 땅 굳는다' 하죠. 비바람 견디지 않고 피는 꽃은 없듯이, 시련이 없는 인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사회 분위기 가운데는 조금이라도 흔들리기가 싫어 스스로 쉽게 꺾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꺾이지 않을 시련에는 흔들리며 견뎌내는 것이 인내이고, 꺾일 정도의 큰바람에는 흘려보내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싶네요. 잔바람과 된바람을 구분하는 능력 또한 시련을 통해서 길러낸다 생각한다면, 젊은 시기에 시련을 감당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화려하기보다는 담담하고 다정한 글로 저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의 따뜻한 글 속에서 기쁨도 느끼고 슬픔도 느끼며 위로받는 기분을 얻었죠. 김경진 작가가 글 속에서 말했듯 불행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 아닐까요? 요즘은 책을 읽을 여유도, 친구를 만날 약속도, 가족과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시간은 곧 마음의 여유라고 하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오늘을 보내고 있다면, 잠시만 멈추고 시 같은 에세이, 에세이 같은 시를 한번 읽어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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