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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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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2,605회 작성일 22-05-0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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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들은 이면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전부 다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내 집단에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습득하고 상대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에서 오고가는 대화는 건전하지 않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변질되어버리게 된다.

 

 

 

혐오 그리고 갈등에 대한 발언은 돈이 된다.

 

모두가 모두를 미워하는 시대에선 미움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간다. 혐오를 조장하는 정보가 넘쳐나면서 나도 모르게 혐오하는 사회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혐오는 대게 다수가 아닌 소수 집단에게 향하게 된다. 다수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적 권력으로 뒤쳐져 있기 때문에 충분히 짓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혐오는 소수를 넘어서 다수를 향하게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다수를 향해 확장되는 혐오는 어떻게 전염병처럼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걸까? 물건이 상품화 되어 팔리기 위해서는 유통업자가 있어야 하듯이 혐오 역시 유통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이런 혐오를 유통하는 업자는 누구일까? 바로 유통함으로써 이익,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혐오 조장하는 발언을 통해 사회를 이슈화 시키고 소수를 차별하는 발언을 통해 소수를 미워하는 다수의 표를 받는 구조를 통해서 권력에 한층 더 다가간다. 대표적으로 여성 가족부 폐지 및 무고죄 처벌 강화는 안 그래도 심각한 성별갈등을 더욱 악화시켰고 결과는 투표결과에서도 뚜렷하게 반영이 되었다. 20대의 여성들 중 58%는 이 후보자를 지지하였고 20대의 남성들 중 58.7%는 윤 당선인을 지지하였다. 디지털 크레이터 및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혐오 컨텐츠를 제작해 경제적 이익을 그리고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다. 뉴미디어(유튜브)가 지난날의 언론(서면, 뉴스)을 대체하면서 컨텐츠이자 상품인 정보를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음으로써 조회수를 높여야만 환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편견 섞인 재료를 엄선하고 자극적인 양념을 더해 미움을 요리하고 이 불량 가공식품을 대량으로 유통한다. 자극적인 만큼 전파가 강하고 한 번 중독되면 질리지가 않을 뿐더러 자극에 무뎌지게 된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더 강력한 환각을 유도하는 마약을 찾듯 더 큰 자극을 찾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 자극적인 공약과 컨텐츠가 연쇄작용처럼 납품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각자의 터전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우리는 불량 가공식품에 대한 사실 유무를 확인할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우리는 타인의 판단에 휩쓸리는 동조현상으로 인해 불건전한 정보를 선택하지 못하고 그대로 학습하게 된다.

 

 

 

무지를 아는 것이 앎의 시작이다

 

그렇다, 다수의 의견을 모방하는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발언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있는 SNS의 컨텐츠를 통해서 우리는 전염되고 있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노골적으로 특정 집단을 공격하고 상처를 입히는데 주저함이 없을수록 추종자가 더 많이 따르게 되고 투표율이 높아지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사회는 무분별하게 내 입맛에 맞는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려하는 우리의 태도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명시해야하다. 직접 경험하고 알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디어에서 습득한 정보들은 어디까지가 참일까? 지금 내 옆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의 절반인 이성을 미워하려는 선택을 내린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알고 있을까? 이러한 대답에 우리는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서 꼭두각시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10분짜리 동영상에 의해 확증편향에 갇혀 살아가게 된다. 알기 때문에 확신을 하는 것 같지만 모를 때 확신은 더 강해지는 것이다. 내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정보는 정보가 제작될 때부터 날조가 되는 경우가 있다. 또 지식반감기가 짧아진 현재 실제로 팩트인 정보들조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 오늘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의심 없이, 오랫동안 믿게 되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를 모르는 편견을 가진 상태에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비판이 아닌 비난, 혐오로 집결시키는 효과가 있다.

 

데카르트는 모든 지식을 의심하고 그 중 어떤 것도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나만의 주체성이 확립할 수 있는 기준과 함께 스스로 검열할 수 있게끔 이면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잘 못된 뿌리가 더 곧게 자리 잡기 전에 사회적 기준을 바꿔나갈 수 있으며 남들에 의해 선동되지 않을 수 있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토론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춰갈 수 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혐오가 혐오로 돌아오는 사회에서의 단절되고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건전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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