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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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이 책을 사로잡은 글귀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세상은 조금만 방심하면 훅 하고 나를 위협해오는 인간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쩔쩔맨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조차 상처를 주고받으며 후회를 반복한다.
왜 우리는 서로 아끼고 보듬어줘도 모자란 사람들의 가슴만 그렇게 후벼파고, 정작 단호해야 할 사람에겐 아무 말도 못 하는 걸까? 정확한 표현으로 나를 지키면서도 사소한 일에는 날 세우지 않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순 없을까?
어떻게 해야 나답게, 편안하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관계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
이 책에 대한 간단명료한 설명이다. 나와 그리고 내 주변사람들 모두가 품고 있는 고민들을 말해주는 것 같다. 모두의 머리속에서 얽혀있지만 풀어내기 어려운 주제들, 쉽사리 꺼내기도 감추고 있기도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어가면서 나만의 복잡한 인간 관계에 대한 매뉴얼을 정리해보았다.
- 기초 믿음의 회복
세상은 그렇게, 가까이 보면 늘 변하지만, 멀리서 보면 늘 그대로다.
그러니 관계가 영원하지 않음에 너무 미리 겁낼 필요는 없다.
계절 내내 나무는 모습을 달리하지만, 늘 그 나무인 것처럼,
강물은 늘 흐르지만, 강은 여전히 강인 것처럼
누군가는 떠날 것이고, 누군가는 올 것이며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가지고 있던 ‘완벽한 관계에 대한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족에서부터, 애인과 친구까지 내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절대적인 완벽함이 존재하리라 믿었었다. 이러한 지나친 믿음은 상대에 대한 영원함을 맹세하고 상대에게서도 영원한 신뢰로 보상받길 원했었다. 이렇게 제멋대로 만들어버린 나의 환상은 필연적이게도 현실과의 괴리감을 만들어냈고, 결국에는 의심과 실망에 취약한 내 자신만을 남기게 되었다.
작가가 말을 빌려보자면 관계에 대한 완벽주의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절대적인 하나 됨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개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상호적 관계로 완성될 수 있다. 서로가 있어야만 완전함을 갖는다는 것은 서로의 불완전함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짧지 않은 과거만 해도 그러한 관계에 안정감을 얻었었다. 상대방도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이는 곧 관계의 영원함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불완전함에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서로에 대한 무제한의 의존도는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게 되고, 서로의 개별성을 상실하고 결국 자아가 무너뜨리게 된다. 타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으로부터 온전함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은 자기 자신의 삶의 풍요도를 결정지을 뿐 존재성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자신이 흐려지지 않게 지킬 수 있어야 하며, 인간관계의 완벽함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 그걸 꼭 말로 해야 압니다.
감정의 은폐는 우리를 피해자로 만들거나 가해자로 만들거나, 혹은 그 둘 모두로 만들어버린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는 건 그저 갈등을 다른 형태로 만드는 것이고,
분노로 관계를 망가트리거나 참다가 병이 나는 것 모두 건강한 자기 표현을 배우지 못한 비극인 것이다.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냐고 묻고 싶겠지만, 그걸 꼭 말로 해야 할 때가 있다.
대한민국의 사회에서는 참을 인에 대해서 성숙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이 광장에 모여 토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해왔다면, 동양은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 즉, 성찰과 깨달음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왔고 말이 없는 사람을 점잖고 신중하다고 평가하곤 했다. 나 역시 부모님께 어릴 적부터 들은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감정을 표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 넘실대는 감정을 절제하려고 했고, 평형 상태를 추구하려고 했다. 내가 감정 상태의 파동이 커질 때마다 불안한 상태라고 정의 내렸고, 그런 모습을 아직 미성숙하다고 간주하였다.
그렇게 20년을 넘게 살아오니 표현 뿐만 아니라 감정을 말로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힘들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삭혀 내려가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나를 제외한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이 곁에 있을 때는 나의 감정이 들킬까봐 두려워한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감정 표출을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른 상태’, 그리고 그 일을 저지른 나 자신을 ‘생각이 어린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나의 오만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공간에 가서 입을 꾹 닫고 눈을 감고 모든 오감이 닫힌 상태로 내몰았다.
하지만 감정의 창고에 감정을 켜켜이 쌓아나가다보면 더는 들어갈 곳이 없는 어떠한 형태로든 감정이 문제를 일으킨다. 실제로 묵혀두었던 감정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되었다. 소중한 사람들에 불필요한 분노가 될 때도 있었고,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기, 의도적으로 소통하지 않기 등 비열하면서도 수동적인 형태를 띄기도 하고,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들에게 느닷없는 마음의 화살이 되기도 하였다.
나의 마음을 위해서 그리고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나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아직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함을 주는 방법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고, 방법을 모르기에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서 겁이 날 때도 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는 너그러운 둔감함이 있기에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상대와 나를 무력해지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배워가면서 성장하려 한다
- 세상은 더럽고 치사한 곳이 아니다
모욕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함부로 모욕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더럽고 치사했다고, 되돌려 주지는 말자.
적어도 그 모욕에 익숙해지지 말자.
어른들은 흔히들 이야기한다. 돈 버는 일이 더럽고 치사한 일이라고. 우리가 받는 월급에는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거라고. 우리는 무례함에 대해서 체념해버렸다. 그들의 무례함에 동의하였고 마땅히 받아야할 존중을 우리 손으로 포기해버린 셈이다. 그럴수록 가해자들은 당당함을 얻어 갑질이라는 칼을 휘둘을 뿐이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쓰레기가 쌓인 골목길처럼 모욕이 있는 곳에서 모욕은 더 쉬워졌다.
작가는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꼭 그런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냐고. 우리가 시선을 거둔 곳에서는 모욕이 마구잡이로 재생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무기력하게 칼날 같은 폭력에 노출되어갔다.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왔던 간에 우리가 멈춰야하고 멈출 수 있다. 차가운 칼바람과 거칠고 척박한 공기를 멈추려면 부드럽고 따뜻한 햇볕이 필요하다. 타인에 대한 애정, 너그러움은 어렵지 않다. 적어도 우리는 무례함이 난무하는 세상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당신이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당신이 사랑하며 살면 좋겠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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