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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신학 - 존 파이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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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3,085회 작성일 22-06-02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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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신학

존 파이퍼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만납니다.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싹틔워 갑니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충분히 쌓였을 때, 둘은 상대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기로 결단합니다. 둘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회적으로 둘이 하나 되었음을 공표하고, 하나의 가정을 이룹니다. 사람마다 세세한 내용과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부부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합니다. 기독교에서 결혼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고 그들에게 첫 명령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종교 대비 미혼자의 결혼 의향률이 가장 높고 (73.6%, 2022년 지앤컴리서치), 기혼자의 출산율도 가장 높습니다 (1.71명, 2022년 지앤컴리서치).


  많은 기독교인은 결혼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기고 결혼을 당연시합니다. 그러나 결혼하기에 앞서 결혼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결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그의 저서 '결혼 신학'을 통해, 결혼을 앞둔 많은 기독교인 미혼자들에게 말합니다. "결혼은 서로에 대한 사랑 그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을 훨씬 더 뛰어넘는 것입니다... (중략)... 결혼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 사이의 언약을 지키는 사랑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단순히 두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동거할 사회적 명분을 주고자 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향한 사진의 언약을 드러내기 위한 메시지를 담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결혼에 대해 여러 구절을 통해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중 가장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구절은 에베소서 5장 22~25절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 에베소서 5장 22~25절 (개역개정) -


  양성평등을 제창하는 21세기에 에베소서 5장이 설명하는 결혼은 기독교인들에게조차 구시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사용되는 '복종'이라는 단어와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로 인해 현대인들은 본 말씀에 거부감마저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단어들을 단순한 복종과 사랑이 아닌 '교회가 하나님께 하는 복종'과 '그리스도가 교회에 하는 사랑'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 명령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이끌림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교회에 보인 사랑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자신의 무언가를 죽이는 희생을 동반하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희생은 남편의 취미가 될 수도 있고, 식습관이나 삶의 루틴, 평생 꺾어본 적이 없던 고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태생적인 모성애로 인해 희생적인 사랑의 본능이 내재한 아내가 아닌,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성향이 강한 남편에게 이러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성경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 말합니다. 여기서 복종은 영어로 submit, 받아드리라는 의미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뜻을 받아들이되,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듯 하라고 말합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을 다 이해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믿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보의 부재 속에서도 신뢰를 준다는 의미죠).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믿기로 먼저 결단하고, 믿은 후에야 예수님의 뜻을 차츰차츰 알아가는 겁니다. 성경은 아내가 남편을 신뢰할 때 그의 행동과 계획이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보다는 먼저 존중해주고 믿음을 주라고 말합니다. 힘의 논리를 따르고 상·하위 복에 익숙한 남편들보다 아내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부부 관계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표현하는 비밀이자 비유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5장 32절). 바울의 서신서 이외에도 성경에서는 지속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할 때 부부의 관계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 남편 호세아를 떠나 외도하는 아내 고멜을 사용하였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술라미 여인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 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하는 인간의 마음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향한 자신의 마음과 하나님을 향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인간의 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극 속에서 남편과 아내는 각자 다른 역할을 부여 받았습니다. 사랑을 모르는 남편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해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역할을 주셨고, 복종을 모르는 아내에게 복종을 가르쳐주기 위해 복종하는 인간의 역할을 주셨습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결혼에서 아내는 남편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으며, 남편은 아내의 무조건적인 순종을 받기 위해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과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를 배우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독신의 은사(하나님이 주신 은총)'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독신의 은사'라는 단어는 교회 내에서 순전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은사이지만 장난과 조롱의 도구로 사용되는 독신의 은사는 겉보기에는 은사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단어로 보입니다. 하지만 앞서서 본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독신의 은사가 어떤 은사들보다도 더 귀하고 값진 은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비유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르쳐주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없이도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경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결혼이라는 비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독신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결혼 신학'은 결혼의 의미 외에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 그리스도인의 이혼과 재혼, 독신자와 기혼자의 교제 등 결혼에 관련된 다양한 성경적인 해석을 제공해 줍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입장으로 책을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성경이 말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무지하였는지, 또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결혼을 준비해야 할지 깨닫고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결혼에 대한 소망이 정서적 안정과 데이트 비용 감축, 자녀의 재생산, 욕구의 해소 등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부터는 결혼을 통해 하나님을 더 배워가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내 될 사람과 함께 성숙해갈 하루하루를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직 저와 아내 될 사람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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