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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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나티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이성적인 깨달음과 통찰보다는 ‘슬픔’이라는 감정만이 남아있었다. 죽은 이의 책을 읽는다는 것, 죽어가는 과정을 들여본다는 것은 깨우침보다는 가슴을 사무치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한다. 그건 아마도 폴의 담담하면서도 초연한 자세 넘어서의 슬픔을 먼저 느껴서일 것이다.
다른 이들의 죽음을 위해 싸운 의사가 죽음을 직면하게 되는 이 모순적인 상황에 더욱 큰 비통함을 느낀다. 그가 의사였을 때는 행위의 주체자로써 문장의 주어와 같은 역할을 했다면 환자가 되고 나서는 어떤 일을 당하는 대상이 되어 목적어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가 마치 천사와 씨름한 야곱처럼 죽음과 씨름했으나 결국 승리하는 것은 죽음이었고,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 빨리 패배의 대상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암을 진단 받은 날에 소리 내어 울었고, 수술실에서 보낸 마지막 날에도 울었다. 암은 그의 시간 뿐만 아니라 기력까지도 빼앗아 버렸고,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원하는 것보다 빠르게 닥치게 되었다.
타인의 시선에서도 안타까웠던 상황에서도 폴의 마지막은 우아했다. 그는 옛 정체성을 그대로 되돌려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신에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아가려고 했다. 신경외과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지켜낸다. 수술실에 오래 서서 버틸 수 있게, 그리고 작은 사물들을 현미 조작할 수 있게 운동했고, 항암치료 화학 요법에서도 독성이 덜한 물질을 선택하여 그의 손기술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그는 복귀에 성공하였고, 레지던트 생활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는 축소된 현실 속에서도 부단히 노력했고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그 결과로 그의 미래였던 사랑스러운 아이와 내 앞에 있는 책을 선물해주었다. 그에게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을 선물해주었고,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편히 쉴 수 있게 해준 그의 딸은 그의 미래를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이 땅을 떠나고 난 뒤에도 그는 글로써 여전히 살아남아서 다른 이들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저자의 아내의 에필로그로 마무리 된다. 저자의 죽음으로 인해서 갑자기 끊겨버린 듯한 이 책은 그의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말해주는 듯하다. 암은 그의 미래에 놓인 사다리 대신 현재로 축소하였으나. 이러한 현재는 영원함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나이가 들고 늙을수록 조금은 철학공부를 해야 될 것 같아. 오히려 철학적이어야 된다.
그 말은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된다. 그게 옛 것을 돌아보고 회상하고 추억하고 눈물 흘리고, 그런 것이 아니라 산다는 게 뭔지, 왜 사는지, 세상이 뭔지, 나는 누군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뭔지. 친구는 뭔지, 건축은 뭔지, 도시는 뭔지.. 하여튼 좀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시 곱씹어 보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좀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 되겠다. 맑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을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정기용
나는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살아가면서 숨쉬듯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 헤아려본 적이 있었던가? 사실 나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힘주어 사색해본 적 없다. 인생의 도착지의 깃발을 꽂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그 깃발을 왜 거기에 꽂았는지, 그 깃발을 왜 챙겨갔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배를 몰기 위해 끊임없이 노를 저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고 며칠만에 나의 삶의 의미를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이 쓱쓱 빚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의미(meaning)을 글로 표현하기 책을 두번씩 읽고, 폴의 생각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내 머리 속에 문득 들었던 생각들을 풀어내보려고 한다. 산다는 것의 의미,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는 철학적이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삶은 ‘책임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삶과 죽음의 사이 공간에서도 폴이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순간적인 행복과 타락와 같은 곳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생명을 구하는 것의 책임, 한 생명의 책임을 다 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책임을 짊어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회사에서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일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그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닦아주고, 자식이 되어 부모님의 남은 여생을 함께하고,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어 곁에 두기에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그런 엄청난 무게 속에서 잠깐의 행복의 이상의 진정한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이 어려운 성숙함으로부터 나의 삶의 끝자락에 있어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을 준다. 삶의 유한성에 굴복하여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가치를 찾아가야 한다. 내 스스로 선택해 무거운 짐을 등에 올리는 것 그리고 그 짐을 성실히 더 높은 곳으로 들어올리는 것에서 내 자신이 실존함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폴이 치열하게 사색한 글로부터 나의 시선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내 현재를 만들어주는 존재들에 책임을 다하고 그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책임을 선사해줄 수 있는 그들에게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려 한다. 언젠가 내 숨결 또한 바람의 한 줄기가 될 테지만 그렇게 사라지는 순간에도 남은 이들에게 책임을 다했던 사람이었길 그리고 바람이 되어가는 내 자신에게도 책임을 다했길 바란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의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폴이 사랑스러운 딸 케이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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