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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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과의 카카오 톡 대화창에 "뭐하냐?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알람이 울린다. 평상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공감을 해주고 편안하게 이해해준다는 연유로 많은 친구들은 고민이 있을 때 고맙게도 나한테 연락을 해준다. 하지만 남의 응어리진 고민을 들어주는 나는 그 누구에도 내 골치 덩어리를 들쳐 보여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끔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려 짐을 챙기면 어머니는 항상 걱정 섞인 말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혹은 “말해 줬으면 고마울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아 나는 정말 남한테 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내 비치지 않았나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의 이야기를 모눈이 인쇄된 다이어리 안에 풀어놓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적은 문장들은 자욱히 낀 안개를 걷히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지만 안개등과 같이 안개 속에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과 같았다.
『꾸준한 기록은 더 나은 경험이 되고, 경험은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본 책은 기록을 잘 할 수 있는 기술적 측면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하는 저자의 태도를 통해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기록이란 곧 사라져 버릴 현재를 소중히 붙들어 영원히 존재하게 해주는 수단이며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려는 순간 사라지려는 위태로운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지금에서 찾아낸 가치이지만 기록된 이상 사라지지 않고 빛이 날 미래로 간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서 모눈종이에 듬성듬성 적혀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단지 골머리 앓게 했던 고민을 나열하는 단어였을까? 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심탄회한 글이었을까? 아니면 행복을 가장한 형식적인 글에 불과했을까? 오랜만에 먼지가 자욱히 쌓인 16년도라고 적혀있는 다이어리를 꺼내서 한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당시 나는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캐리어 하나와 함께 유럽에서 자유를 정신없이 만끽하는 나이만 22살인 어린 아이였다. 꾹꾹 담아 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약 3~4주간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길거리에서 순간적으로 찍은 사진에는 담기지 못하는 생생한 내 감정이 담겨있었을 뿐만 아니라 복학을 앞둔 복학생의 불안함과 설렘이 은연히 들어나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걱정이 되고 그랬는지 색다른 문화와 절경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있는 와중에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문구가 많았고 지금은 눈, 코, 입 어느 하나 기억이 나지 않는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그렇게나 물어봤나 싶다. 그만큼 당시의 나는 2년의 공백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대학교 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았었나 보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여행의 끝자락에서의 하루의 기록은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나 '할 수 있다'라는 부적과 같은 표현으로 온점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문장들을 기록하고 난 후에 당시의 감정이 잊혀져 갈 때 쯤 다시금 마지막 문장을 되돌아봄은 ‘나다움’을 확인하기 위한 접촉면을 넓혀주었다. 내가, 내 손으로 적은 기록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위해 나아가는지 명확하게 해준다. 지금의 나가 3인칭의 시점으로 나만의 언어로 기록된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객관화’한다. 별거 없어 보이는 일상생활의 기록은, 기록을 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각인 시켜주는 도구가 되었다. 필요한 것 그리고 순간을 남기기 위해 기록을 하는 행위는 단순한 1차원적인 의미를 넘어서 ‘나’라는 존재에 심도 있게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재정비를 함에 있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일관성 있는 노력을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기록의 쓸모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쓸모’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기록에 나름 쓸모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각자의 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기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수고를 들여다보면서,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해주는 것 같다. 나의 역사를 쌓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습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도 기록이라는 습관을 통해 나를 사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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