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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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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2,873회 작성일 22-04-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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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슬픈 감정은 언제일까? 언제인가 SNS 상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신이 인간의 언어를 만들 때 남편을 잃은 아내는 과부,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 그리고 부모를 잃은 아이를 고아라고 칭했으나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아픔을 가늠할 수 없기에 마땅한 호칭이 없었다고 한다.’ <바깥은 여름>의 첫 번째 이야기인 <입동>에서는 도배를 통해 결코 잊을 수 없는, 덮어버릴 수 없는 바로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남편)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바깥은 여름>의 옴니버스 구성에서 첫 이야기인 <입동>은 세월호라는 강력한 알레고리에 묶여있는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험했기에 예상이 가능하고 일상적인 배경과 어디에선가 존재할 법한 인물들의 사건이 투영된 <입동>은 남의 슬픔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선택적으로 남의 감정에 반응하는지를, 그리고 공감하는 시간은 얼마나 짧고 이후에는 얼마나 냉랭하게 돌아서서 무지에 도달하는지를 다루면서 남겨진 이들이 이런 꽃매 속에서 어떻게 아파하는지 천천히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뻔한 클리셰임에도 불구하고 <입동>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고통에 대한 무지, 무지로 인한 고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입동>에서 이해를 가장한 모름으로 알게 모르게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 숙사해야한다. 폭력의 근원지는 당사자(부부)의 슬픔을 일으킨 사건에서 오는 것 뿐 만 아니라 모름이라는 타자성과 슬픔을 대하는 혐오에서 나온다. 타인은 안과 바깥을 들여다보면서 이해를 했다는 미명하에 당사자(부부)의 상처를 잘 다독여 주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그 이해를 바탕으로 당사자(부부)들이 더 이상 그을려질게 없다는 판단 하에, 뜨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생각 하에 나오는 행동은 그들에게 지금껏 느낀 폭력과는 또 다른 폭력을 가하게 된다. 아직 그들(부부)은 아픔과 그을음을 몸에 지닌 채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슬픔을 느끼는 당사자가 아닌 무지한 3자는 당사자가 느끼는 슬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이를 해석하여 이제 그만 울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폭력은 타인의 고통에 무지(이해를 가장한 모름)하고 그것에 관심을 거둘 때 발생하는 것이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입동의 의미는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 라고 정의된다. 그런 의미에서 <입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문장은 부부가 영우를 여의고 바들바들 떨리는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시기를 입동이란 단어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표제인 바깥의 여름은 어떤 걸 의미할까? 아내가 주저앉은 채로 “다른 사람들은 몰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부부)의 고통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는 <입동>속 부부가 아닌 다른 3자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고통에서 바깥에 있는 외부자라는 것이다. 이때 외부자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무지에서 비롯한 행동으로, 바깥은 여름인데 ‘왜 추위에 떠냐’와 같은 발언으로 그들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의 말을 조용히 따라하며 공감을 해주었듯이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겨울이 다가오는 곳에서 같이 곁에 있자.


 

 모르고 있음으로 인해 심연에 빠진 그들(부부)이 우리의 위선에서 기인한 모름으로 “다른 사람들은 몰라”를 내뱉기까지의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같이 아파해주고 슬퍼해주었다고 그들이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있음을 인지함으로부터 그들과 함께 있어주자. 그러면 언젠가 그들이 슬픔의 절댓값을 다 견뎌내고 생명력이 가득한 한 여름으로 나올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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