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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방정식』 -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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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2,994회 작성일 22-05-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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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된 유일한 자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은 객관적이지 않다.​

똑딱, 초침이 넘어갈 때 방 안의 사람들은 같은 1초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 다른 내적 시계로 셈을 하고 있다.

인간은 하루, 한시간, 1분, 1초, 한 달과 1년을 구분할 수 있지만, 각각의 뇌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다르게 지각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나의 경우, 어떤 일을 몰두해서 하다 보면 벌써 하루가 지나가 있고 일주일이 흘러있다.

같은 24시간이 주어질 때 나보다 수많은 일들을 하루 만에 처리해내는 옆 사람을 볼 때면 특히나 허무하고 씁쓸한 감정이 배로 몰려온다. 

그리고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가는지 그들의 관점이 진실로 궁금할 때가 자주 있다. 

운이 좋게도, 현재 나의 주변에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주는 좋은 선배와 동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잠시 나와 한 공간에 함께한다는 이 행운을 감사히 여기며 어서 그들을 쫓아 많이 보고, 따라하고, 체득해야겠다는 생각이 상당히 절실한 요즘이다.

 

 

소설 속 ‘유현화 박사’는 천재 이론물리학자이자, 미시세계에서 발생하는 시간거품현상 연구로 학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슈퍼스타이다. 

그에 비해 지극히 평범했던 동생 ‘나’는 천재 언니의 논문을 이해해보려 애썼지만 이내 한계를 깨닫고 현실을 수긍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유박사는 어린 동생에게 관람차 이야기를 해준다.

 

풍경은 멀어질수록 고정된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시간도 느리게 흘러가.

관람차야말로 시공간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구조물이지.

밖에서는 분명히 캐빈들이 등속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안에서는 정상으로 갈수록 풍경도 시간도 멈춘 거처럼 느껴지는 거야.

 

 

한때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느 한 노인과 일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노인이 젊었을 적에는 하루하루가 고달팠고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되짚어보니 

그간 살아온 세월들이 너무나 순식간에 흘러간 것 같다며 허탈한 감정을 담아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더니 그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이 먼 산을 내다보았고 잠깐 동안의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철없던 나는 그 찰나의 침묵이 주는 지루함을 못 견뎠고 그 순간을 무마하고자 마지못해 공감을 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 당시 눈앞에 닥칠 일들만 밥먹듯이 걱정하던 나의 입장에서 그 노인이 하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심심하고 한가롭게 들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때 그 노인과 철없던 나의 모습이 소설 속 천재 언니와 어리숙한 동생의 이미지로 비슷하게 오버랩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새벽 3시, ‘나’는 유현화 박사, 하나뿐인 혈육인 나의 언니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고 결국 시간지각 지연 증후군 판정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유 박사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마치 얼음세상에 홀로 갇힌 사람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너무 느릿해졌다. 

심지어 본인 이름을 불러도 한 시간 뒤에 가까스로 반응할 만큼 증상이 심각했다. 

동생은 하루아침에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자신의 언니를 매일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그러다 어느 날 옛 추억을 되살려 관람차를 타러 함께 떠난다. 

아무말 없이 정상을 향해 돌다가 순간 세상의 풍경이 정지한 지점에서, 

나는 느려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께 차분해진 나의 감각이 비로소 언니의 의식과 대면하는 아름다운 기적을 경험하며 소설이 끝난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고독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서울과 달리 이곳 카이스트 교정을 둘러보면 유독 어린 애기들이 딸린 가족이 주말에 나들이 오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애기들이 티없이 해맑게 웃으며 두팔벌려 겅중겅중 풀밭 위를 귀엽게 걸어다니고 그 뒤로 유모차를 끌며 슬슬 따르는 부모님들이 보인다. 

저 아이의 아버지도 바쁜 일상이 주는 노곤함과 피로감을 가족들에게 단단히 감춘 채 어린 자녀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기 위하여 외로이 노력하고 있음을 감히 추측해본다. 

분명 나의 유년시절 기억 속 우리 아버지도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버지는 항상 매주말마다 철없는 우리 형제를 위해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곁에 함께 있어 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30년 세월 가까이 아무 말씀 없이 가족을 위해 고독히 헌신하셨다...


달력을 보니 올해 어버이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고향에서 다 큰 아들을 걱정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부모님을 위하여 

작은 선물 하나 사들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날은 잠시 자리를 비워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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