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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는 건축, 길들이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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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태
댓글 0건 조회 2,610회 작성일 22-02-0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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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는 건축, 길들이는 인간

-          이상현

“혹시, 어디 사세요?”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인 인사로 나누는 말입니다. 주로 친분이 깊지 않은 사람에게 자주 쓰이는 인사말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인사말을 통해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능력을 가늠하고는 합니다. 이는 곧 무의식의 계급이 되어, 상대방과 나를 가늠하게 합니다. 이처럼, 집이라는 개념은 고대 사회부터 현대 사회까지, 나의 지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는 거주지뿐만 아니라, 집의 형태 또한 사람의 위치를 나타내는 또 다른 수단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감독인 봉준호는 주인공 “기탁”의 서울 내 낡은 반지하 집과, 박 사장의 높은 언덕에 지어진 넓은 2층 맨션을 통해 두 사람의 계급 차이를 은유적으로, 그러나 무엇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활하는 “땅”이라는 공간 아래 지어진 “반지하”의 사람들은 창문을 보면 항상 사람들을 올려다보게 됩니다. 그에 반해, 높은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밖을 보면, 사람들을 내려다보게 되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라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게 되고, 그 무의식이 건축물에 투영되며, 일종의 나 위치를 나타내 주는 “호패”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해당 책에서 필자는 이를 “길들임” 이라고 표현합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만인이 평등한 사회에서도 우리가 자연스럽게 계층을 나누는 것처럼 말입니다. 길들임을 위해서는 물리력과 이념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리력에 의존한 길들임은 아무 때나 사용돼서는 안됩니다. 큰 갈등과 충돌을 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물리력을 사용하기 이전, 이념적 장치를 이용한 길듦이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건축물”을 통한 길듦은 개인적 차원에서 쉽사리 거부할 수도 없으며, 마땅히 대체할 방안도 없다는 점에서 다른 장치보다 매우 효과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공간 내에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설적으로 “공간”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오피스텔 안에 사무 공간을 꾸며 놓으면 해당 공간은 사무실로서 기능 할 뿐,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무실이란 공간 안에서 우리의 행동은 “업무”로 제한됩니다. 

 이러한 길들임은 다만 용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반지하를 예로 들면, 공간이 지면 밑에 있기 때문에 해당 공간 내에서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는 게 강제됩니다. 문화 관습적으로 높은 계급을 가진 이들은 높은 위치(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에서의 왕의 군 좌와 신하들의 위치를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지하 거주민의 위치는 타 사람들 대비 밑에 있게 됩니다. “공간”의 위치 및 제약 때문에 사회에서의 나의 계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 때문에 전체적인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저같이 자기 집이 없이 월세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도심의 중심에서 외각으로, 고층에서 저층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건축물, 집이 일종의 자산으로써 계급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수단이라면, 이는 일반 서민들의 사회적 계급이 낮아지고 있다는 신호일 것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주거 안정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 현상을 인식하지 않고 마냥 몇백만 호를 짓겠다, 라는 성찰 없는 정책은 분명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기저에 가지고, 진심으로 서민을 위해 정책을 펴는 정치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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