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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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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윤희
댓글 0건 조회 3,019회 작성일 22-03-0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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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언어

수많은 말들 사이에서 미묘한 온도 차를 쉽게 눈치채는 나에게 언어는 중요한 요소다. 그 하나에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하루종일 요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세상에는 깊은 언어, 화려한 언어, 담백한 언어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맑은 언어들을 좋아한다. 듣기만 해도 좋아지는 표현들이 있다.

 

좁다란 길 향기를 채우는 가로등 빛 물든 진달래꽃 이 향기를 그와 함께 맡으면 참 좋겠네

산책, 소희


아직 성숙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는 ‘행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말들에 매력을 느낀다. 이런 말은 애써 해석하려 하지 않아도 주변에만 가도 밝은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다.

 

찬란하다

언어에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찬란하다’에는 시각적인 요소가 있다. 노랫말에서 어렵지 않게 ‘찬란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이 말이 들리면 내 기억 속의 가장 예쁜 장면만 곱게 개어서 선물 받는 느낌이 있다. 물론 그 장면 사이에는 가슴 벅차는 설렘도 담겨있다. 어느 노래 가사 중 ‘빈틈 없이 행복해’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에게 찬란하다는 말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행복으로 꽉꽉 채워서 잠깐동안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슬프다, 서럽다, 서글프다

‘슬프다’는 말은 ‘행복하다’의 반대말로 생각하지만 그 폭과 깊이가 우리가 취급하는 것보다 훨씬 커다랗고 복잡한 단어다. 그 안에는 힘들고, 괴로운 감정 뿐만 아니라 외로움도 존재한다. 나에게 ‘슬프다’는 ‘위로 받고 싶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삶에 힘겨워져서 누군가의 다정함이 필요할 때 슬프다는 감정이 떠오른다.

이런 슬픔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서럽다’는 표현을 한다. 타인에게 혹은 삶에 상처 받았거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 슬픔이 터져버린다. 그 감정의 폭이 파도의 물살처럼 거세지면 그냥 어린 아이처럼 목놓아 울고만 싶을 때가 있는데 이 때가 서러움인 것 같다.

 ‘서글픔’은 이 슬픔에 ‘애틋함’이 들어 간다. 서글픔의 주체는 나일수도 있고, 타인일수도 있다. 그 주체가 불빛이 한없이 약해지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그 애틋한 마음으로 새까만 어둠 속에서 사라져가는 존재에 맞추어 조용히 내 빛도 희미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이 애틋한 마음은 그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기에 어찌보면 슬픔의 단어 중에서 가장 따뜻한 단어인 것 같다.

 

지질하다(찌질하다)

 지질하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쿨하지 못하고, 작은 것에 연연해하는 사람들에게 지질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지질한 사람 중 하나이고, 이 지질함을 좋아한다. 구차하고 모양새가 빠지는 것에 개의치 않고,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게 오히려 더 멋져보인다. 이런 지질한 사람들이 거시적이지는 않아도 사람들의 작은 상처에 안부를 묻는 역할을 한다. 그 작은 사소함이 더 근사해보일 때가 있다.

 

포기

이전에는 ‘포기’라는 단어가 그렇게 무책임해보일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무능력의 상징과도 같았다. 근데 내 경험에 비추어보니 그 반대였다. 포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쌓아놨던 것에 눈을 돌리고 과감히 가능성의 끈을 내 손으로 끊는 것, 그리고 온전히 내 판단에 기대어 다른 길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더 어렵다. 그렇기에 포기는 눈에 보이지 않은 단단함이 숨어있는 단어다.

 

향기

향기는 코로만 맡는 게 아니라 하나의 분위기로 기억된다. 진한 향수가 아니더라도 그 시간, 그 장소의 풋풋한 향기로 추억을 기억할 수 있다. 나는 엄마의 옷장 냄새를 좋아한다. 아무리 섬유유연제를 바꾸어도 엄마의 옷장 안에서는 변하지 않는 특유의 따뜻함이 있다. 엄마의 옷을 빌려 입을 때면 하루종일 그 향기가 나는데 그럴 때면 소중한 추억의 장면들이 나와 공존하여 행복을 품고 다니는 느낌이 든다.

 

행복

행복은 까먹는 스낵처럼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 느껴야지만 그것이 진짜 행복이고,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유난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여기서 유난스러움은 행복에 뭔가 특별한 경험이 필요할 것만 같은 부담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내가 당연시 여겼던 사소한 모든 감정이 행복이었고, 마법처럼 황홀하지는 않아도 그 자연스러움 속에 조금은 특별한 감정이 행복이었다. 그건 작은 쪽지 같아서 내 근처에 있어도 거기 있다고 말을 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쉽게 지나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두 눈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두 팔을 휘저어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내 하루를 펼쳐보았을 때 작지만 충분히 반짝이는 경험들이 많이 있었고, 생각보다 내 인생은 근사했다. 오늘도 행복을 피부에 저장하며, 저금통에 동전 하나 넣듯 내 삶에 행복을 넣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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