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보다 네가 먼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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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국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해매이고 싶소
김효근, 가곡 <눈> 中
요새 성악 레슨 때마다 열심히 연습 중인,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재생되고 있는, 김효근 교수님께서 작곡한 가곡 <눈>의 가사 일부이다. 눈(雪), 특히 ‘첫눈’은 문학에서 – 적어도 내가 본 상당수의 작품에서는 – 설레는 만남, 인연 등을 상징하는 소재로 쓰인다.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같은 노래라든가, 아니면 위에 짤막하게 적어놓은 김효근 교수님의 <눈>에서라든가. 그래서 <첫눈보다 네가 먼저 왔으면 좋겠다>라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사람과의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반만 들어맞았다. 인연에 대한 것은 맞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게 다를 뿐.
“이 조그만한 게 뭐 위로가 된다고.” /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이 따뜻한 소설은, 흔히 ‘집사’라고들 표현하는 고양이 주인과 고양이와의 이야기를 사람이 아닌 고양이의 시점에서 써 내려간 작품이다. 주인공 ‘영채’는 재수 생활을 하면서 양육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친오빠의 제안으로 잠시 ‘장미’와 ‘스미레 (일본어로 ‘제비꽃’)’라는 고양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 그리고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를 공유하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해가면서 어느새 나는 너에게, 그리고 너는 나에게 밀리지 않는 하나의 배경이 되어가는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숲에 살던 어느 길고양이와 친해지게 되며 급기야 연인(연’묘’라고 해야 맞을거 같지만, 어감이 이상하니 그냥 연인이라고 하겠다)으로 발전하게 된 장미는 어느 날 스미레에게 그를 따라 숲으로 가겠다는 말만 남기고는 영채의 집을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배경 한 부분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영채와 스미레가 겪는 슬픔과 적응의 과정을 그렸다.
고양이를 키우는 내 친구들을 보면, ‘개냥이’를 만난 일부 축복받은 집사들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고양이 특유의 뻔뻔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애기 때는 하루 종일 잠만 자다고 서운하다고 하다가, 성장해서는 집 안을 온통 뛰어다니며 휘저어놓는 ‘우다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그리고 자기가 얘기할 때에는 쳐다도 보지 않더니 배고플때나 뭔가 원하는게 있을 때에만 자기에게 다가오는 듯한 모습에 약이 오를 때도 많다고. 그렇지만 그놈의 ‘귀엽다는’ 것 하나만으로 참다가 어느새 정이 들어간다나. 그러다 언젠가는 친구 한 명이 키우던 고양이가 시름시름 앓다가 ‘고양이별’로 떠났다고 한동안 그렇게 서럽게 울었더랬다. 장미가 사라진 날 온 동네를 미친듯이 울면서 돌아다니던 영채처럼.
책의 내용은 사람과 고양이 사이의 이야기지만, 사실 서로 언어적인 교감이 부재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람 사이에서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우연히 반가운 만남이 생기는가 하면, 어떨 때에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도 헤어지고, 그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나날.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끊임없이 혼자서 일어서 걸어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마치 고양이들이 겉으로는 고독을 즐긴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고양이도 겉으로 표현을 못하는 것일 뿐, 집사의 부재를 묵묵히 견디는 중인 것처럼.
그 사이에 영채는 학원에 다니고 명랑해졌다. 다시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다. 전화를 들고 웃고 떠드는 날들도 많아졌다.
나는 외로워하지 않았다. 혼자 살 준비를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나간 시간들이 그리울 테지만.
– 본문 中, 남겨진 스미레의 혼잣말
책 제목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글의 첫 마디를 김효근 선생님의 <눈>의 가사로 뗀 것이 다소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바와 통하는 부분이 꽤 있을지도 모르겠다. 옆에 있던 존재가 떠나도 그 발자국이 남아 있으나, 언젠가 눈은 녹아 없어지고 그 해의 첫눈은 또 오는 것처럼. 떠나간 인연이 있으면 잠시 쓸쓸함을 만끽하다가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는 것. 책에서는 고양이를 얘기했지만 사람도, 마치 눈이 녹고 다시 첫눈이 내리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려나.
눈, 고양이, 사람.
다소 뜬금없는 이 세 개의 소재는, 이렇게 연결고리를 놓을 수도 있는 듯하다. 그래,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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