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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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단어
박웅현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자기계발서를 좋아한다면 얼핏 보았을 때 저자가 무슨 말을 할지 얼추 가늠이 되는 목차이다. 이 책을 처음 도서관에서 뽑아 들었을 때 그런 내 짐작이 맞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책장을 넘겼고, 곧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보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8개의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 방식은 여느 두루뭉실한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저자의 사실적인 경험과 그를 뒷받침할 다양한 사례, 작품과 함께 울림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삶에 변화가 있을 때 종종 다시 이 책을 펴보곤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덟 단어는 각각 작가의 통찰이 묻어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 중에서 삶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건 아래 3개의 챕터이다.
#인생-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안달복달하지 않는 태도
전역 후 경제적으로 독립해야했기에 학교 생활과 동시에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병행해야했다. 처음에는 열정이 넘쳤고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정신없이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면서 어느 순간 이런 상황에 대해 불만이 쌓여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것만으로도 대견한거라고 합리화하며 학업을 소홀히 여기며 방황을 시작했다. 그 당시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당시 아래 구절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대부분 병이 없는 상태를 자기의 기본값으로 잡아놔요.
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가 정한대로 설정해놓고 생각합니다.”
‘인생’ 챕터에서는 삶의 불확실함, 불공평함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강조한다. 나는 그때 마주한 상황이 내가 임의로 정한 디폴트값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주위 친구들과 비교하며 불평하고, 내 삶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인생은 내 뜻과 무관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는 불공평함,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비로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업을 행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물론 해결 가능한 것은 해결해야겠지만, 그런 요소들에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를 받을 게 아니라, 어려움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그중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안고 갈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걸 이 챕터에서 배울 수 있었다.
보왕삼매론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
- 중국 명나라 때 묘협이라는 스님이 불자들이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지에 대해 쓴 글
#자존 – 내 안에 있는 별을 무시하지 않는 것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은 때는 회사에 갓 입사하여 배치된 부서에서 현업을 시작할 즈음이다. 한껏 부푼 기대와 함께 시작한 첫 사회생활은 생각한 만큼 장밋빛은 아니었다. 입사교육이 끝나자마자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업무들과 생각보다 냉정한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석달 정도 지나자 그런 업무와 분위기에도 점차 적응이 되었다. 밀려오는 업무들을 바삐 처리하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퇴근 버스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달마다 통장에 들어오는 분에 넘치는 월급은 나에게 잘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런데도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그런데도 뭔지 모를 공허함이 마음 속에서 피어올랐다.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 생계를 해결하는데 급급했던 나머지 적성에 대해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 그 때부터서야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진 걸 내려놓고,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냉정하게 다시 생각했다. 대학원을 다시 고려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자기 인생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인생에 정석과 같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자존’ 챕터에서 저자는 타인의 인생을 동경하고 맹목적으로 좇지 말고, 나를 제대로 알고 인생을 나만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것을 강조한다. 자존이 없다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요소를 모두 갖춰도 불행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라는 라틴어를 인용하는데 이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이 땅에서 짧은 생을 살다가 간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운명을 스스로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고, 그 이야기를 본인이 사랑할 때,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중에도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이 책이 나의 선택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망설이는 순간에 용기내는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했던 선택은 혹자가 보면 역행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순간에 찍은 대학원이라는 하나의 점이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든 좋은 방향으로 연결될 것을 믿는다.
“메멘토 모리와 아모르 파티. ‘죽음을 기억하라’와 운명을 사랑하라’는 죽음과 삶의 상반된 의미의 조합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니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고, 그러니 지금 네가 처한 너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태도가 자존 같습니다.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운명이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
#현재 –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
그리고 지난 달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을 실행에 옮겼다.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주위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선택을 내린 데는 크고 작은 그럴듯한 이유들이 있지만 솔직하게는 나도 내 선택에 100퍼센트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결단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이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전 다시 펼쳐든 이 책에서 아래 문구가 마음에 들어왔다.
“옳은 선택은 없는 겁니다. 선택을 하고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고 그걸 옳게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냐, 바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입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들려면 지금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게 제일 좋은 답이에요.”
‘현재’ 챕터에서는 어떤 순간이든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으며,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들로 현재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현재 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강조한다. 저자의 말대로 옳은 선택은 없으며, 옮게 만드는 과정이 나에게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문이과 선택, 재수를 할지말지, 전공을 뭘로 할지, 군대는 어디로 갈지 등등 굵직한 선택의 기로가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직전에 마주했었던 취업이냐, 대학원이냐의 선택 역시 누구나 겪는 진부한 선택의 기로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선택의 기로를 마주할 때도 많은 고뇌에 빠졌지만, 결국엔 정답은 없고 뭐가 됐든 밀고 나가는 게 가장 중요했었다. 지금의 선택이 옳았는가 역시도 전적으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현재 순간에 집중하며 대학원 생활을 해나가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 한형조> 中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 생각을 하고 있고,
잠 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언젠가 다시 이 책을 꺼내 펼쳐보는 순간이 올 것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읽는 시점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달라짐을 이 책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도 다양한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될텐데 앞으로의 경험들로 인해 나중에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여덟 단어 중 또 어떤 단어가 내 마음 속에 담길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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