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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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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창연
댓글 0건 조회 2,797회 작성일 22-04-0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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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오웰-


 

 80년 가까이 고전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는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이 소련의 전체주의에 대해 노골적으로 풍자한 소설이다. 소비에트 체제에서의 타락한 독재권력들을 의인화하여 권력층의 독재로 인해 조직이 어떻게 부패해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야기는 ‘존스’라는 동물들을 학대하는 악덕 주인이 운영하는 ‘메이너 농장’에서 시작된다. 그의 농장에 늙은 수퇘지 메이저는 인간에 의해 더 이상 착취되지 않는 동물들의 농장을 꿈꾸며 ‘영국의 동물들’이라는 노래를 전파하고, 동물들은 그 노래를 읊조리며 꿈을 키워간다. 어느 날 동물들은 주인의 학대에 못 이겨서 홧김에 혁명을 일으키는데 이때 우연치 않게 농장을 차지한다. 이후 지적 능력을 갖춘 두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지도를 따라 농장 이름을 ‘동물농장’으로 개명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농장을 세운다. 동물농장은 아래와 같은 7계명을 만들어 동물들의 행동 지침으로 삼았다.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자는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동물농장의 기틀이 잡히고 한동안은 평등한 지상낙원과 같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불평등이 싹트기 시작했다. 먼저 문자를 능숙하게 해독할 수 있는 것은 돼지들 뿐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문자 해독능력이 있는 돼지들은 지적노동자로 군림하고 다른 동물들은 육체노동자로 전락했다. 또한 돼지들 사이에서도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권력 투쟁이 심화되었다. 결국 나폴레옹이 개들을 몰래 길들여 자신의 사병으로 만든 후 풍차 건설을 주장한 스노볼을 축출했다. 이후 나폴레옹은 그에 대한 모든 과거를 왜곡시켜버린다. 스노볼은 애초부터 인간의 스파이였으며 이전의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 역시 연극이었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과거 역시 미화시켜 점점 우상이 되어갔다.

 

 동물들은 서로가 평등하다 믿으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더 열심히 일했으나, 식량 배급은 반으로 줄었다. 반면 돼지들은 이제 더 이상 평범한 동물이 아니라 온갖 특권을 누리는 귀족이 되었다. 그들은 농장주가 살던 집을 차지하고 그들이 입은 옷을 입고 술을 마시며, 동물농장을 세울 때 만들었던 7계명을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수정했다. 이러한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은 동물들에 의해 운영되는 농장의 소속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간다.


 모든 동물들이 평등한 대접을 받는 동물농장 건설의 꿈은 여전히 시들지 않았으나 그들이 건설한 사회는 인간 대신 동물에 의해 동물이 착취당하는 사회이다. 즉 동물농장은 메이너 농장으로 부활된 것이다. 부활된 메이너 농장에서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과는 경제적인 면에서, 정보의 차원에서 평등하지 않은 특권층이 되었다. 처음 일곱가지 계명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결국 다음과 같은 유일한 계명만 남게 된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이후 돼지들은 당당하게 두발로 걸어 다니며, 인간들과 거래를 하고, 집으로 초대하여 만찬을 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인간들과 뒤섞여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동물들의 시선에서 아래와 같이 묘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가 없었다.”


 

 동물농장은 비단 특정 시대에 얽매이는 역사적 풍자는 아니다. 의인화와 비유를 통해 우화적인 성격을 띤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시대의 독재권력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사회 어디에서나 일어날 법한 독재 일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작가가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 세계에, 그리고 미래세계에도 계속 있을 것이다. 동물농장이 오늘날까지 고전 명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 정치사회의 권력이 부패하는 근본적 원인과 위험을 쉬운 언어로 날카롭게 짚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제는 ICT기술과 국제 협력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소비에트 체제처럼 국가단위의 독재가 나타나기는 어렵겠지만, 안도하고 방심하는 사이에 우리를 둘러싼 크고 작은 인간사회 조직에서 언제든 이러한 권력의 폐해는 나타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이를 막기 위해 구성원 개개인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이 있을지 숙고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비판적 사고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농장이 독재의 늪에 빠지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구성원들이 비판적인 사고없이 권력층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부패의 첫 시작은 돼지들이 사과와 우유를 독점하기 시작한 때이다. 돼지들은 사과와 우유에 돼지에게 필수적 영양소가 포함된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선동하고 다른 동물들은 의심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이 때 누군가 그 근거에 대해서 따져 묻고 돼지들은 견제했다면 부패가 싹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이후에도 돼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통계자료를 교묘하게 조작한다. 아래 구절들은 몇몇 예시인데 이 구절들을 읽으면서 나는 왜인지 모르게 현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상황들이 오버랩되었다.


 

“매일 밤 스노볼이 어둠을 타고 농장에 들어와 옥수수를 훔치고 우유 통을 엎고 달걀을 깨뜨리고 묘판을 짓밟고 과수나무 껍질을 이빨로 물어뜯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뭐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모두 “스노볼이 그랬다.” 가 되었다. 창문이 깨지거나 배수구가 막혀도 꼭 누군가가 나서서 지난밤 스노볼이 들어와서 그랬다고 말했다.


 

“나이든 동물들은 반란 초기 농장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더 못했던 것인지 기억해보려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들로선 지금의 삶을 견주어 비교해 볼 만한 것이 없었다. 돼지 ‘스퀼러’가 읊어 대는 통계 숫자 말고는 어디 의존할 자료가 없었던 것이다. 그 통계 숫자를 보면 언제나 모든 게 더 나아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동물들로선 전혀 풀 길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으로선 동물들이 그런 걸 생각해보며 앉아 있을 틈도 없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될수록 한 개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와 깊이는 좁고 얕아질 수 밖에 없다. 그에 반해 과거와 달리 우리는 더 많은 매체에서 쏟아지는 정보에 노출되어 선동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자기 분야 외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어느 조직에서든 동물농장에서의 상황은 재현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머리 아프고, 지금 마주한 현실을 살아가기 급급하다는 이유로 출처도 모르고 사실확인도 안된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우가 꽤나 많았던 것 같다. 이러한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나의 관심영역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비판적 사고력 못지않게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작중 ‘벤저민’이라는 당나귀는 농장에서 가장 지적인 동물로 묘사되며 모든 사태의 전말을 처음부터 예리하고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본인이 나서더라도 아무 변화도 없을 거라 믿으며 사태를 방관하고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그의 유일한 친구인 말 ‘복서’가 돼지들에 의해 도축장에 팔려가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내용을 보며 어디선가 읽었던 아래 시가 떠올랐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


 


 성인이 된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본 경험이 없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무관심에는 굳이 내가 나서더라도 별로 바뀔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극중 당나귀처럼, 위 시에서처럼,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나서도 바뀔 것이 없다는 생각이 개인에게 팽배해질수록 사회는 더 부패하기 쉬워지기 마련일 것이다. 당장의 하루일과에 바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틈틈이 짬을 내서 나부터 먼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아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책을 읽으며 개인으로서 자기자신의 안위와 경력을 챙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올바르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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