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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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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3,478회 작성일 22-01-05 00:22

본문

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유치장에 수감 중인 청년 레이토는 지금껏 존재를 몰랐던 이모 치후네로부터 교도소에 가지 않게 해줄 테니 그 대신 시키는 일을 하라는 기묘한 제안을 받는다. 레이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그녀가 맡긴 건 ‘월향신사’라는 곳의 녹나무를 지키는 일. 그 녹나무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험한 나무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러 온다. 처음엔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했지만, 그러기엔 녹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태도가 심상찮다. 얼마 후 레이토는 심야에 녹나무를 찾아온 여대생 사지 유미와 마주친다. 유미는 자신의 아버지가 여기서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하는지 파헤치려 뒤쫓아 온 것. 레이토는 반은 호기심에, 반은 어쩌다보니 유미에게 협력하게 된다.


  위의 줄거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파수꾼" 550여 페이지의 본문 중 앞쪽 50페이지 정도의 내용입니다. 이 소설의 핵심 줄거리는 주인공 레이토가 녹나무가 가진 힘과 녹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비밀을 푸는 것이죠. 따라서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주인공과 같이 단서를 얻고 비밀을 추리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단순한 추리소설로 끝내지 않습니다. 그는 녹나무라는 메개체를 통해 의심과 불신만 남은 현대사회의 인간관계 속에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음을 역설하였습니다.

 

  스스로 저주하는 출생의 사연 탓에 조금은 함부로 살아온 청년 레이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이토록 처지가 안타까운 사람이 있을까 싶은 배경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부모를 여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하는 레이토에게 세상은 너무도 잔혹하고 냉정하였습니다. 비극까진 아니더라도 애정할 수 없는 가족사를 지닌 채 홀로 큰 기업을 이끌어온 치후네. 독신으로 노년을 맞이한 치후네에게 남아있는 가족은 배다른 누이의 아들 레이토 뿐이었습니다. 사회의 밑바닥에 살던 레이토와 치열한 상류층을 견뎌낸 치후네.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사람은 그렇게 가족이라는 끈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레이토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여유가 없었던 치후네의 관계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레이토는 치후네가 배푸는 어색한 친절을 의심하고 그녀가 맡긴 녹나무 파수꾼의 의미를 비밀리에 파해치려 합니다. 한편 여대생 유미는 가족 몰래 녹나무를 찾는 아버지가 분명 바람을 피고 있는 것이라 의심하고, 비밀을 파해치고자 레이토에게 협력을 요청합니다. 소설은 치후네와 기업 임원들의 정치 싸움, 유미 아버지의 외도와 같은 미스터리한 주제를 가지고 흘러가면서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줍니다. 하지만 단순한 미신인 줄 알았던 녹나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소설의 분위기는 극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녹나무는 핏줄로 이어진 두 사람을 염원을 통해 연결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염원이란 선대가 후대에게 전달하고픈 가치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억의 형태로 전달되는 것을 의미하죠. 염원은 전달하는 사람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전달 받는 사람에게 전부 전달하기 때문에, 전달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기분을 줄 수 있는 행사입니다. 따라서 염원을 맺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레이토는 녹나무의 비밀을 알아낸 후 치후네 몰래 그녀의 염원을 받게 됩니다. 레이토는 염원을 통해 치후네가 사실은 치매로 고통 받고 있으며, 그녀의 유산을 레이토가 이어주길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유미는 그녀의 아버지가 녹나무의 매번 방문했던 이유가 작곡가였던 죽은 형의 염원에 담긴 마지막 피아노 곡을 옮겨 적기 위함임을 알게 되고 자신도 염원에 참여하여 피아노 곡을 완성합니다.


  염원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장치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세상에 녹나무가 존재하고 염원이라는 의식을 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걸 하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크게 부담되는 일이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면에서 떳떳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죠. 히가시노 게이고가 출생의 비밀, 사내 정치, 외도와 같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모들을 소설의 전반부에 조명한 것과 대비되게 염원이라는 인간의 이상적인 면모를 후반부에 드러낸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어쩌면 작가는 인간의 가장 부정적인 모습 속에도 이상적인 면모가 존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이러한 구조로 소설을 작성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한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성품을 평가한다 해도, 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녹나무가 존재하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사람의 속을 파고 파다보면 안좋은 생각과 감정, 기억이 결국 드러날텐데, 우리는 그걸 모르기 때문에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소설과 달리 세상에 완전히 떳떳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앉은 사람에게도 떳떳하지 못할 모습이 있지만, 그래도 모른 척하고 받아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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