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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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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소희
댓글 0건 조회 2,790회 작성일 22-02-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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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출근하면 해가 뜨기 전 한껏 붉어진 하늘을 볼 수 있다. 어두컴컴한 새벽하늘에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새벽같이 어두운 시기에 길을 밝혀주는 빛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 어둡지만 해 같은 존재 덕분에 상황이 밝아질 것이란 희망이 가득한 시기를 밝은 밤이라고 칭하고 싶다.

 

소설 밝은 밤은 4대에 걸친 여성들을 주축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현대까지 살아오는 여성상에 대해 각자 살아온 시대들을 설명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여성을 상징하는 증조할머니 삼천이와 새비, 한국전쟁 이후 교육보다는 돈을 벌고 가정을 꾸렸던 대부분의 여성을 상징하는 할머니 영옥과 이와 반대로 그 어려운 시절 대학에 진학하여 ‘신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희자. 그리고 오늘날 우리네 엄마의 모습을 한 엄마 미선, 오늘날의 딸들을 대표하는 ‘나’ 지연. 삼천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고 가부장제도 속에서 항상 수용의 자세로 살아왔다. 한국 전쟁 중 피난길에서는 남자의 울타리 밖에 있는 여성의 위치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삼천이의 딸 영옥이 또한 남선과 아버지의 강요로 결혼하게 되었지만 알고 보니 남선은 중혼이었으며 애기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아버지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중혼 사실을 알고 화를 내는 영옥에게 도리어 남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며 화를 낸다. 이렇게 남성우월주의가 가득한 사회 속에서 적응하는 법, 즉 수용하는 방법이 생존하는 법이었던 어머니 시대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태도는 금지되고 위험하다고 비난당한다.

 

이런 사회속에서 삼천, 새비, 영옥과 희자는 연대를 통해서 상황을 극복하려고 한다. 단순한 위로보다는 깊은 유대관계 속에서 마음의 공유로 어두운 상황 속에서 서로를 밝혀주면서 상황이 좋아질 것이란 희망을 품은 밝은 밤을 만들었다. 관계가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상처를 통해 유대관계가 더욱더 단단하게 형성된다. 사람 덕분에 행복하고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상처받은 마음이 사람 덕분에 극복된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회복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회복의 과정 중에서 다시 상처받는 것이 두렵기에 묻어두고 외면하기 때문이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지뢰처럼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는 폭탄을 꺼내 없애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폭탄은 생각보다 잘 없어지지 않고 사람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주인공 지연이도 이혼의 슬픔을 친구 지우로 극복하고 나 또한 사람에 의한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 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소설 끝부분에서 ‘나’와 엄마의, 엄마와 할머니의 화해를 암시하고 할머니와 희자의 재회로 마무리되면서 ‘나’는 엄마와의 화해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자기 자신과 화해도 시도한다. 나 자신과 화해는 독자들에게 특히 더 와닿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연구실에 들어오면서 학부 때와 가장 다른 점 중의 하나가 연구 주제를 맡게 되면서 같이 하는 사람 없이 혼자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학부때는 내가 원하는 공부는 할 수 있었으나 더 나아간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고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하려 하니 연구에 필요한 셋업 및 실험을 위한 모든 결정이 두려웠으며 이런 결정 끝에 나온 실험 결과 또한 당당하지 않았다. 실패를 여러 차례 경험하고 왜 항상 나는 생각을 짧게 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지 한탄하였다. 주변에서는 너가 실패한 것은 실패하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성공한 실험이라도 너의 실험에서는 실패할 수 있으며 실험의 실패를 통해서 해야 할 것을 너 자신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계속해주었다. 즉 불안의 원인은 나였고, 나의 결정에 따른 책임이 두려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의 감정, 내가 내린 결정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 결과에 대한 책임에도 당당해질 수 있다. 나란 존재 또한 어둡고 불안한 마음속의 불빛이 될 수 있다.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 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도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애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밤을 밝게 비춰주는 빛과 같은 존재들은 가족, 친구 혹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그러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두운 밤에서 붉은 기운 가득한 밝은 밤으로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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