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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일에 관하여 - 블라디미르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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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2,874회 작성일 22-03-0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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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일에 관하여

(On the Historical Unity of Russians and Ukraininas)

블라디미르 푸틴


 2022년 2월 24일 새벽 4시 50분.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군사 작전 개시 선언에 따라 러시아 군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포격을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다. 세계 군사력 2위의 러시아의 침공에 우크라이나가 며칠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거나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세간의 예상을 깨고 우크라이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위수로 강력한 항전 의지를 드러내며 의외의 선전을 지속하고 있다. 예상보다 전세가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지원에 미온한 움직임을 보이던 서방 국가들도 태세를 전환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침공은 사실상 도박수의 실패로 보여지게 되었다. 

 사실 러시아의 군사 움직임이 본격적인 전쟁 준비 태세로 돌아서는 상황에서도 세계 대부분의 정치, 경제, 군사 전문가들과 실무자들은 실제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침공이 유럽 내의 반러 감정을 고조하고 서방 국가들의 결속력을 강화할 것이며, 러시아에게 경제 재재가 가하여지는 등, 상식적으로 득실차를 계산했을 때 러시아에게 득도로 불리한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틴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군사력을 동원하여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강수를 두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푸틴의 행동을 단순히 한 독재자의 우발적인 판단으로 보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푸틴이 이러한 판단을 한 데에는 특별한 배경이나 이유가 있지 않을까? 

 2021년 7월 1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러시아 군을 집결시켜 위기를 고조시키는 중 푸틴을 저자로 하는 논문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통일에 관하여 (On the Historical Unity of Russians and Ukraininas)"가 크렘린궁 사이트에서 출간되었다. 푸틴은 논문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병합해야하는 이유를 세가지 들며 본인의 침략 행위의 정당성을 미리 확보하려 하였다. 현재 본 논문이 실린 크렘린궁 사이트는 국제적 해킹 집단 어나니머스의 공격에 의해 폐쇠 되었지만, 한 미국 사이트의 아카이브를 통해 논문을 확보하였고, 그 내용을 분석 및 푸틴의 의견에 반박해보고자 한다.

  푸틴은 논문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루스라는 한 뿌리를 공유하며, 외부 세력에 의해 수차례 갈라졌지만 백성들은 언제나 서로를 하나의 국가로 여겼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이에 대한 주요 근거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루스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Russians, Ukrainians, and Belarusians are all descendants of Ancient Rus, which was the largest state in Europe. Slavic and other tribes across the vast territory – from Ladoga, Novgorod, and Pskov to Kiev and Chernigov – were bound together by one language (which we now refer to as Old Russian), economic ties, the rule of the princes of the Rurik dynasty, and – after the baptism of Rus – the Orthodox faith."
- V. Putin -

  푸틴의 말대로 '루스'는 현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의 기원이 되는 중세 유럽의 민족이다. 루스는 키예프(키이우)를 중심으로 본인들의 최초의 국가 키예프 루스를 건국했으며, 이 키예프 루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공통의 뿌리로 여겨진다. 키예프 루스는 400여년간 지속되다 몽골의 바투 칸에 의해 멸망하며, 몽골에 저항하다 패망한 키이우 루스와 몽골을 인정하고 살아남은 모스코 루스로 갈라지게 된다. 

  몽골이 떠난 뒤 우크라이나에서 세력을 형성하던 코사크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폴란드의 박해를 받게 되었고, 카톨릭 교도인 폴란드에 의해 종교적인 탄압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코사크의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치키가 일으킨 대대적인 무장 봉기는 폴란드에 진압될 위기에 처했고, 그는 우크라이나와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공통점이 있는 루스 차르국, 지금의 러시아에 원조를 요청한다. 여기서 푸틴은 코사크가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스스로 들어왔고, 인종적, 종교적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주장한다. 

Bohdan Khmelnytsky then made appeals to Moscow, which were considered by the Zemsky Sobor. On 1 October 1653, members of the supreme representative body of the Russian state decided to support their brothers in faith and take them under patronage. In January 1654, the Pereyaslav Council confirmed that decision. Subsequently, the ambassadors of Bohdan Khmelnytsky and Moscow visited dozens of cities, including Kiev, whose populations swore allegiance to the Russian tsar.
- V. Putin -

  그러나 코사크의 지도자 이반 마제파는 러시아의 점진적인 지배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켰고, 현재 마제파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푸틴은 논문에서 마제파를 개인의 정치적 욕심을 위해 수많은 국민들을 희생시킨 학살자로 매도한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수차례 폴란드나 오스트리아 제국에 의해 영토를 빼앗기고 탄압을 받아왔으며, 제국의 세력이 약해질 때마다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도움으로 외세를 몰아낼 수 있었다 주장하지만 실제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러시아도 침략국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수차례 독립을 시도하였고 결국 러시아가 공산혁명으로 정세가 어지러울 무렵인 1917년에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세우지만, 폴란드 제2공화국 및 소련의 침략으로 우크라이나는 두갈래로 갈라지고 만다.

  냉전시대 소련 치하에서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러시아로부터 많은 땅을 환수 받았으며, 소련 공업의 중심지이자 곡창지대로 활용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순전히 소련의 전략적인 목적을 위해 영토가 부여되었으며, 스탈린의 경제계획 실패의 가장 큰 희생양으로 많은 국민들을 잃은 희생양이었다. 푸틴은 소련 치하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폴란드 땅을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소련 붕괴 이후 땅을 원래대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영토는 애초에 폴란드와 소련의 침략으로 빼앗긴 땅이었기 때문에 이를 돌려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푸틴은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같은 뿌리를 지닌 형제이며, 우크라이나가 외세의 지배를 받을 때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구해주고 땅과 자원을 지원해준 동맹이고, 언어적 종교적 동질감을 지닌 이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추진했던 마제파, 페틀류라, 반데라를 국가적 영웅으로 삼으며 러시아를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나 오스트리아와 다를바 없는 침략국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는 관점의 큰 차이가 있으며, 푸틴은 철저히 러시아의 관점으로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제단하고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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