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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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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소희
댓글 0건 조회 2,828회 작성일 21-11-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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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TV에 나오는 퀴즈쇼를 보면서 정답을 재미 삼아 맞춰 보면서 나도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알고 있는 시사상식으로 일확천금의 기회를 얻을 기회는 달콤해 보인다. 주인공 이민수는 1990년대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할머니 밑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겨진 빚더미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민수는 빌게이츠의 파란 화면 속 퀴즈방으로 빠져들었다.

 

퀴즈 방안에서의 민수는 언제나 주인공이 되고 승리자였다. 어두운 현실을 탈피하고자 승리만이 있는 퀴즈의 세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시작은 퀴즈쇼였다. 많은 상금을 획득한 민수는 소매치기로 상금을 도난당하고 같은 퀴즈쇼에 출연한 이춘성이 다가와 평생 퀴즈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공간 ‘회사’를 소개한다. 여기서 ‘회사’라는 공간은 매주 반복되는 퀴즈쇼로 돈을 벌 수 있는 초현실적인 공간이다. 불편한 진실로부터 계속 도망만 다닌 민수에게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퀴즈’만’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공간은 유토피아와 유사하다.

 

하지만 민수는 ‘회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퀴즈를 마음껏 하면서 만족감보다는 진짜 현실을 마주하였다. 이곳에서도 ‘장군, 메두사, 탱고, 유리’ 등 같은 팀원 간의 불화라던지 과도한 경쟁 사회와 그 속에서의 자신의 처지는 현실과 다른 점이 없었다. 마치 콜로세움에 있는 검투사처럼 사람들은 돈을 걸고 사람들의 기대를 부응하기 위해 퀴즈를 푸는 시스템에서 민수는 바깥세상과 ‘회사’의 작동원리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누군가의 유흥거리가 된다는 것에 환멸감을 느낀다


‘그 세계에 있을 때에는 잠시라도 그 소식들을 모르면 큰일날 것 같았는데, ‘회사’에 들어온 이후에는 어느새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삶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그야말로 하나의 ‘낚시’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민수에게 ‘퀴즈’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생계수단으로 삼으면서 퀴즈의 흥미는 사라졌다. 자신이 평생 해도 좋은 일을 실제 사회생활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되었을 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거울 수 있을까? 현실에 치여 좋아하는 일을 더이상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수 있다.


 ‘부모나 선생이 하라는 거는 얌전히 다 했는데, 왜 이렇게 된거야? 왜 우리 주머니에는 그걸 살 돈이 없는거야?'


이는 민수와 친구들과 함께 자신들의 세대의 불행함을 개탄하는 장면이다. 김영하는 20대에 대한 연민으로 소설을 썼지만, 연민을 통한 동정과 위로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 20대를 향해 쓴소리와 충고를 한다. 실업률이 해를 지나갈수록 높아질수록 현재 상황이 힘들다고 안주해버리는 태도를 가지지 말라고 솔직한 충고를 건네고 있다. 이 책은 2000년도 초반이 배경으로 지금의 취업은 그때보다 하늘의 별따기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나에겐 세 명의 친구가 있다. 한 명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친구는 KT 경기권 지사 인턴직무에 지원하여 살인적인 입사 프로세스를 거쳐 8명의 인턴 중 오직 4명만이 정규직 전환이 되어 경기권 KT 지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지방의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는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는다는 생각으로 더 좋은 대학교,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 살아간다. 마지막 한 친구는 서울권의 대학교를 졸업하고 CPA를 준비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점점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세 명은 현실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한 명은 현실을 탈피하려고 하고 한 명은 현실을 만족하고 나머지 한 명은 현실에서 도태되고 있다. 위 세대에겐 그들만의 애로사항이 있었고 이를 극복한 사람들 혹은 도태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금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처한 상황에 무기력하게 도태되어 있기보다는 나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이끈다. 이십대가 듣기를 원했던 말을 해주기보다는 따끔한 충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렸을 때 진로를 정하게 되는 루트는 단순하다. 어렸을 때는 뭘 하든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중 공부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이유로 공대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공부라 생각하고 걸어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차가웠고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학교로 올수록 학생들의 성취욕과 능력은 높아만 갔고 나의 능력은 제자리걸음이 아닌 뒷걸음질 치고 있다. 연구하면서 잦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이런 실패를 어떻게 딛고 일어날지를 고민하는 시간보다 연구주제가 어렵고 힘들고 이를 소화하기엔 내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생각으로 합리화하면서 스트레스만 간직한 채 속절없이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다. 결국 내가 여기 와서 무엇을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어 했는지 망각하고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은 사람 즉 ‘퀴즈쇼’ 속의 도태되어 버린 민수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내 마음속의 패배주의는 언제나 낙관주의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이 생각은 즉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이를 알면서도 언제나 변화보다는 달콤한 방임을 선택하곤 했다.

 

민수도 결국 ‘퀴즈쇼’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더 이상 도피하지 않고 현실을 마주하고 이를 탈피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보이면서 소설이 끝나게 된다. 졸업이 반년 정도 남은 나는 변화의 자세가 아닌 방임의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변화를 하려 하지만 반복되는 실험의 실패로 방임하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걱정만 앞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기를 항상 망설여했다. 일단 단순한 걱정과 망설임을 이겨내고 시도를 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여 피하기보다는 다시 한번 부딪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 나에게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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