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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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 살 수는 없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보단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경우가 있고 특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타인의 눈치를 보고, 인정을 바라고, 이해를 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도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나보다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경우가 있었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서로 배려를 함으로써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배려는 독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가 나의 인간관계 능력이 결여된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더 많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이유 없이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는 건 무리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작가는 ‘나는 누구의 소유일 수 없어. 나에게서 권리를 빼앗으려는 모든 시도를 경계해야 해.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해.’라는 말과 함께 남들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라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책의 전반에 걸쳐 조금씩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인생을 변화시키는 내용이라 그런지 첫 조건부터 생각보다 어렵다. 바로 ‘냉정하게 판단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성적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이 주장은 실행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두려움에 빠지면 냉정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나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두려움이라는 놈과, 상상으로 만든 놈한테 잡아먹히고 있는 불상한 자신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사람이 상대방에게 반응하는 단계를 인지, 판단, 표출로 구분한다면 두려움에 대한 반응도 똑같은 것 같다. 실존하지 않는 대상을 인지하고 생각을 통해 판단한다. 그 판단이 이루어진 머릿속에서 어떤 감정을 표출해야 할지 결정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 즉, 스스로가 두려움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요즘의 내가 이렇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학위논문 심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획대로 준비한 공정이 틀어지거나 원하는 방향의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온갖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고 스스로 두려움의 감옥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내 눈앞에 발생한 결과이고 마주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으니 무슨 행동이라도 해서 두려움의 감옥에서 탈출해야만 했다. 한 사이트의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명언이 빠르게 와닿을 수 있는 꿀팁은 액션을 취해 현재를 과거로 만드는 것’이라는 글이었다. 틀어진 일을 지금 와서 고친다고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가올 일을 걱정한다고 해서 그 일이 나를 피해가 진 않을 것이다. 이미 틀어진 계획이나 다가올 미래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가져간다면 닥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조건인 자신을 자유롭게 했다면 이제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존중하라고 말한다. ‘모든 기준은 세상이 아닌 내가 정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이게 책의 원제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옆 사람이 대단한 발견 혹은 엄청난 부를 얻었을 때 나 자신은 아직 아이디어가 없거나 적은 보수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이라는 면 때문에 비교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비교보다는 나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달성했다면 성공이고 달성하지 못했다면 실패인 것이다. 그 기준은 타인이 아닌 나만의 것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존중받는 방법을 말해준다. 존중받는 방법은 20가지 정도로 소개를 하고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라’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겸손이 마치 사람의 기본 소양으로 생각한다. 물론 겸손은 좋은 게 맞는데, 한국은 겸손하다 못해 거의 땅굴을 팔 것 같은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는 경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는 이런 일을 잘못한다는 말이 어느 순간 스스로 최면을 걸 듯 프레임이 씌워져 진짜로 못한다고 믿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알려야만 한다. 그래야 누군가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할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저 사람은 실속이 있다’라는 평을 받아 존중받을 수 있게 된다.
특이하게 나는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진학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기존 지역에서 거리가 떨어진 학교를 진학해왔다. 그렇다 보니 항생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처음부터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나를 이유 없이 챙겨주는 선생님도 있었고 다른 학생을 편애하는 선생님도 보았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을 해왔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아니꼽게 보던 친구가 어느 순간 같은 취미를 공유해서 절친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원히 서먹한 사이로 남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좋은 사제지간으로 발전된 경우도 있었고 그냥 같은 학교 소속으로 남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의 모든 관계를 비교를 통해 확인해왔던 것 같다. ‘이 친구는 나와 다른 이런 부류의 친구를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해서 비슷한 활동을 하며 친해지려 노력했고 ‘이 선생님은 이런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 애정을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해 비슷한 사람이 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노력은 나에게 조금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세워 가까운 사람들을 더 챙겼더라면 지금보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더 많은 친구들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나는 처음 학위논문 심사를 앞두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당황을 하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비교해 나의 연구가 형편없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아직 학위논문 심사는 한 달이 남아있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내 연구를 평가한다면 아니꼽게 보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 비교가 아닌 내가 만족하는 결과라면 충분히 성공적인 디펜스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는 나의 기준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 한 달을 열심히 준비한다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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