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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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퇴근하고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의 집 앞 골목은 어두컴컴하고 조용하지만 오로지 자취방 건물의 1층 꽃집의 트리만이 빛나고 있다. 빛나는 트리를 보면서 연말이 찾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카페에선 벌써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리고 나노팹 1층엔 크리스마스 장식이 들여왔다. 올해는 어땠는지 생각하면서 괜히 감성적이게 된다. 연말의 분위기는 항상 떠들썩하고 화려하지만 12월 31일을 지나 1월의 첫째 주가 시작되면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즐겼던 연말의 분위기는 마치 크리스마스가 지나 트리를 다시 창고에 넣는 것처럼 허망함만이 남아있다. 다시 트리를 꺼낼 즈음이면 한 해가 또 지나가 있을 것이다. 항상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아쉬움이 남는 해인지 혹은 만족스러운 일 년인지 정리하곤 한다. 돌아오지 않을 지나간 한 해를 정리함으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책을 펼치듯 다가오는 해를 맞이한다.
2021년을 맞이한 지 엊그제밖에 안 되어 보이지만 벌써 12월이 다가왔다. 올해를 되돌아보면 크고 작은 일들의 연속으로 쉴 틈 없이 보내왔다. 일과 인간관계는 항상 한 해의 고민거리이자 행복감을 주는 요소이지만 올해가 유달리 부담이 컸었다. 연구 관련 스트레스가 심하던 와중에 올해 초 유지하던 인간관계 중 하나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과 언제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수많은 관계 중에 하나라도 금이 생기게 되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이를 메꾸기 위해 노력을 하곤 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한번 뒤틀린 관계는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한들 메꿀 수 없었으며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여 점차 움츠러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보지도 않고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전화하면 항상 반갑게 받아주었지만 이런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항상 퉁명스럽게 응대하였다. 틀어진 관계에만 전전긍긍하다 보니 원래 원만했던 관계들을 내가 틀고 있었고 굳이 안될 관계에 매진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감정들이 무뎌지면서 후회의 감정으로만 남았다.
"현자여, 답하소서.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감정은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모든 감정은 담아두지 말고 강물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나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요?"
"강이 흐르는 한 당신의 삶은 지속할 겁니다."
"내가 옳고, 상대방도 옳을 경우에는 누가 옳은 겁니까?"
"당신도 강이고, 상대방도 강입니다. 두 강이 만나 하나가 되어 흘러갈 뿐입니다."
파울로 코엘로 ‘흐르는 강물처럼’
이제까지 겪어왔던 모든 힘든 순간은 지나가 보면 스쳐 지나간 수많은 순간들 중 하나이다. 항상 힘들 때면 사람들은 다 지나갈 것이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도, 시험에 떨어져 낙심한 사람에게도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은 절대로 그런 경험을 잊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무뎌져 갈 때 즈음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갑자기 떠오르게 만든다. 기억은 남아있지만, 감정은 사라졌다. 감정은 감정으로 잊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지만 다른 새로운 관계로 행복해질 수 있기에 그때의 힘든 감정이 지나고 보면 무뎌져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은 또 다른 소중한 것으로 상쇄한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기억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야 하는 것.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는 힘들지라도 시간이 지나가면 흘러가듯 무뎌지고 한층 성장해 있을 것이다.
꽃집의 트리를 보면서 올해를 정리해보았다. 올해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나의 짧은 생각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했고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또한 얼마나 무뎌졌는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잠자리에 들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이런 하루가 반복되면 한 해가 또 지나가고 연말의 트리를 보면서 나와 함께한 사람 혹은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에게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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