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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 - 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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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3,279회 작성일 21-12-0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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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 

슈슈


  사람은 누구나 한 떨기 장미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 힘껏 피어나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을 매료시키는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남의 화려한 장미 정원에 시선을 빼앗기고는 정작 나 방앞 창가에 피어있는 장미의 아름다움은 누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가장 가련한 본성이 아닐까요? 늘 다른 이의 행복을 부러워만 하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나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합니다. 다만, 그 행복이 자신이 아닌 타인의 눈에 먼저 보일 뿐이죠.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가 있습니다. 대박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많이 쓰였고, 힐링이라는 단어도 한창 유행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내려놓으라는 말도 쓰이고 있습니다. 욕심을 버려라. 마음을 비워라. 집착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데, 왜 요즘 들어 이런 말을 많이 쓰고 듣게 되는 걸까요?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의 저자 슈슈는 중국 베이징 쉬산이라는 곳에서 은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마음과 심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녀는 이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내려놓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 사람? 명예? 명성? 모두 아니다. 미국의 미래학자 맬린다 데이비슨은 6년 동안 현대인의 욕망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현대인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내면 깊은 곳의 혼란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류의 원시적인 욕망이 과거의 의식주, 권력, 성에서 내면의 조화로운 상태 추구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차도, 집도, 최첨단 과학기기도 아니다. 건강. 행복. 평화로운 마음의 정서가 가장 필요하다. 욕망이 초래하는 불안과 초조, 그리고 인간관계의 이해득실에서 오는 상대적 상실감에서 벗어나자는 몸부림이 바로 내려놓기로 표현되는 아닌가 싶다."

-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 中 -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은 사람이 원시적인 욕망을 내려놓음을 통해 행복을 찾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비결을 우화를 곁들이 재미있는 내용으로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에, 오늘 일은 오늘에.


  인생은 여름날의 강물처럼 느릿하게 흘러갑니다. 스무 살 때는 나이 서른에 생길 주름 때문에 미리 고민하거나 나이 쉰에 올 노화 때문에 미리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이 올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게 두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최대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삽니다. 불행한 사람들은 대부분 내일을 걱정하거나 어제를 후회하느라 오늘을 그저 흘려보냅니다.


  사하라 사막에 사는 잿빛 모래쥐는 건기가 올 때쯤이면 풀뿌리를 모아 저장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온 사막을 죄다 헤치고 다니며 열심히 풀뿌리를 모읍니다. 그런데 건기를 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풀뿌리를 저장한 뒤에도 모래쥐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풀뿌리를 찾아다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감에 떨며 날카로운 소리로 울어댑니다. 모래쥐 한 마리가 건기를 나기 위해 필요한 풀뿌리는 2 kg 정도이지만 실제로 모아드리는 양은 10 kg가 넘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썩어버리는데도 모래쥐들은 여전히 풀뿌리들을 필요 이상으로 모아드리죠. 그럼에도 모래쥐들은 고통과 피곤함에 시달리면서도 필요한 양의 몇 배, 심지어 몇십 배나 많은 풀뿌리를 모읍니다. 순전히 걱정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모래쥐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필요한 먹이를 다 준비해놓고도 위기를 걱정하고 더 많은 양의 먹이를 준비하는 모래쥐처럼, 우리도 오늘 하루에 집중하기보다 내일의 걱정에 몰두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공상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젤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며, 22%는 굳이 걱정할 필요 없을 정도로 사소하고, 4%는 걱정해봤자 어쩔 수 없고, 남은 4%만 우리 힘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문제라고 합니다. 통계의 숫자는 언제나 진실과 거짓의 양면성을 갖고 있지만, 통계가 함의하는 바를 은유적으로 읽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을 쓸데없는 것이며, 발전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걱정은 극히 소수입니다. 원시적인 욕구들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험요소들이 즐비했던 비문명 시대와 달리 많은 위험요소가 시스템으로 통제되는 문명 시대에는 비생산적인 걱정과 생산적인 걱정을 구분하고, 불필요한 걱정으로 감정을 소비하는 일이 없도록 내려놓는 것이 참으로 중요해졌습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사람들은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갖습니다. 고등학생은 대학 입시 준비가 너무 힘들다고, 대학생은 졸업 후의 취업 문이 너무 적다고, 직장인은 연봉이 너무 적다고, 고액 연봉자는 업무가 너무 과중하다고 볼멘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힘들고 어렵다고 투덜댑니다. 이렇게 부지불식 간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동안 삶은 점차 생기를 잃고 칙칙하게 변해갑니다. 인생이란 정말 이렇게 비참하고 고되기만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신앙, 즉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얼마든지 살맛 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유럽인 관광객 무리가 아프리카의 한 원시 부족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마을 입구에는 흰옷을 입은 노인이 정좌를 한 채 짚으로 모자나 가방 같은 물건을 만들고 있었죠. 그런데, 본업이 장사꾼인 프랑스인 한 명이 노인의 물건을 보고는 눈을 반짝였습니다. 하나 같이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프랑스로 가져가 팔면 분명히 히트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사꾼 특유의 머리를 돌리며 노인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이것들은 얼마입니까?" "종류 상관없이 하나에 10달러요." 노인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프랑스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세상에, 화수분이 여기 숨어있었군. 노인장. 내가 짚 모자와 짚 바구니를 각각 10만 개씩 산다고 하면 하나당 얼마씩 깎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금세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당 20달러는 받아야겠소이다." 프랑스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뭐라고요? 대체 어째서입니까?" "어째서냐고요?" 대노한 노인이 외쳤습니다. "난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구먼. 똑같은 모자와 바구니를 10만 개씩이나 만들라니. 그러다간 금방 지루해서 죽어버리고 말 거요."


  노인의 외침에서 알 수 있듯이, 똑같은 일도 좋아서 하느냐 돈 때문에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만일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이상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먹고 사는 문제나 돈 문제만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면 갈수록 더 피곤해지고 짜증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상과 신앙은 그 자체로 인생의 행복에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명예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또 누군가는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 말하죠. 다른 이는 권력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라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왜 명예를 가진 사람들도 나름의 걱정 속에서 힘겹게 살고 있을까요? 왜 돈을 가진 사람들도 여전히 돈 문제로 전전긍긍하죠? 권력을 가진 이들만큼 자신의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명예, 돈, 권력은 그 자체로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각각을 어떤 이상과 신앙의 잣대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정해지죠. 만약 남을 돕는 인생을 살겠다는 이상을 가진 사람에게, 명예는 도움의 손길을 모으는 자원이 되고, 돈을 물질적인 도움을 위해 재료가 되며, 권력은 도움이 필요한 곳을 발견하는 눈이 되어줍니다.


  이처럼 이상과 신앙에 이끌리어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원래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이상, 신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상과 신앙은 결코 듣기 좋은 빈말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삶에 매 순간 관여하며 영향을 미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바꿀 때, 비로소 삶 자체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뜬구름 잡는 그런 소리 듣기 싫다'라는 말을 입에 단체 이런 가치를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진짜 행복을 바란다면, 이상과 신앙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월간 '좋은 생각'을 창간한 작가 정용철은 그의 저서 마음이 쉬는 의자에 걱정과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신의 가슴에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실패와 낙심으로 힘들어 해도, 곧 일어나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 테니까요." 우리는 당장 눈에 행복을 찾기위해 욜로의 이름으로 소비를 하고, 워라벨의 이름으로 휴식하고, 빚투의 이름으로 투자를 합니다. 하지만 꿈과 이상, 신앙이 없이 SNS와 트렌드만 쫒는 삶이라면 그 트렌드가 끝나는 순간 얼마나 허무할까요? 당장은 보이지 않고 조금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나만의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정하고 나아갈 꿈을 꿔보고자 합니다. 넘어짐이 그저 아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을 향한 준비가 되고, 실패가 포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상을 향한 도약이 될 수 있도록. 믿음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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