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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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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3,247회 작성일 22-01-0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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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박사학위가 끝났습니다. 힘들고 버거운 일도 많았지만 큰 문제 없이 무사히 학위과정이 끝난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쁜 일도 많았지만 몇몇 아쉬운 부분이 있어 시원섭섭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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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뒤돌아 생각해보면, 대학원에서 보냈던 시간은 힘듦과 고됨의 연속이었습니다. 연구라는게 본질적으로 백 번 실패하다가 한 번 성공해서 결과를 내는 것이니, 좀처럼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박사학위를 마친 사람들은 각자의 고난을 각자의 방법으로 이겨냈을 것이고, 저보다 앞서 학위를 마친 선배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저도 나름대로의 제 방법으로 저의 길을 잘 걸어왔고, 앞으로 이 길을 걸을 후배들에게 미약하게나마 이 힘듦을 이겨냈던 방법을 글로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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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건대, 학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고의 깊이입니다. 대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논문 실적, 인맥, 좋은 대학 간판은 피상적으로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깊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사고 수준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도 나와 비슷한 사고 수준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대 초반, 20대 후반, 30대 초반을 지나오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마다 사고의 깊이는 천차만별이며, 나이가 사고의 깊이를 대변해주지 않습니다. 높은 사고 수준을 가진 사람은 낮은 사고 수준을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합니다. 마치 선생님들에게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안 들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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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의 깊이가 연구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가끔씩 우연치않게 운이 좋아 연구 결과가 잘 나오거나, 좋은 연구 주제로 높은 수준의 저널에 게재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사위를 던지면 던질수록 정규분포에 수렴하는 것처럼, 자기 실력이 아닌 운에 의해 결과를 낸 사람들은 그 한순간만 반짝할 뿐입니다. 꾸준히 훌륭한 결과를 낸 사람들은 운이나 연구 주제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과 통찰력은 모두 사고의 깊이에서 나옵니다. 의미와 가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고는 숫자와 결과를 쫓는 그것과는 애초에 다릅니다. 주어진 것만 할 수 있는 사람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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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측면에서, 사고의 깊이를 깊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각은 머리 속을 맴돌다가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잡아 문장으로 만들고 하나의 글을 완성시키면 그 글은 내 무의식 속에 남아 나를 더욱 성장시킵니다. 이러한 글들은 마치 설산을 등반할 때 베이스 캠프를 세우며 더 높이 올라가는 것처럼 내 사고의 수준을 더욱 높여줍니다. 단순히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 정도의 일과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원 생활에서 겪는 힘듦과 막연한 마음을 문장으로 길게 적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이 담긴 글을 하나씩 적어가다보면 점점 본인의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장이 모여 글이 되고, 이러한 글들이 모이면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 남아 삶을 대하는 태도도 점점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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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인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은 비단 연구뿐만 아니라, 물질과 결과를 쫓는 세상에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대학원 생활을 하다보면 주위의 수많은 소음에 흔들리게 됩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시대에 올라탄 친구를 보거나, 높은 연봉을 받는 친구, 벌써 결혼한 친구를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것에 흔들리고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것에 집착하게 될수록 공허함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어느새 쉽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내 안에 생긴 공허함을 채우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은 괜히 내 마음 속의 공허함의 크기만 키우고 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한 줄씩 써내려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삶에 애착을 느끼게 되고, 내가 겪은 상처와 힘듦, 고난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야말로 실로 값진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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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기쁘지만 아쉬움이 남는 학위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인생의 스토리에 강한 애착을 느낍니다. 인간은 완벽한 것을 동경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겪었던 것들을 자랑스러운 상처라고 생각하기에 되돌아가고 싶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역경들이 모여 미약하게나마 제 사고의 깊이를 깊게 만들어 준 것이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부디 제가 걸었던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도 자신의 이야기에 애착을 가지기를, 그리고 그들에게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뒤따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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