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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흩어지는 구름" (소설집 <환한 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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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3,014회 작성일 22-02-03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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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2016년의 나는 연구에 대부분의 기력을 매진하고 있는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달랐다. 군 시절 상병 때부터 혼자서 끄적이며 연습한 캘리그라피를, 이후 강남 가로수길에서 단체 전시회도 참여해보고, 각종 행사에서 부스를 운영하는 등 여러 경험을 쌓아가던 때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문적으로 글씨 쓰는 사람이냐는 소리를 들어가던 중 문득 이것을 정말로 진지하게 취미 이상으로, 부업으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물론 수많은 전업 작가들을 만나가며 나는 그저 글씨를 조금 잘 쓰는 정도, 소위 말하는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애매한 재능’이라는 담론이 가장 돋보이는 영역은 역시 예/체능 영역이다. 수능을 전국 100등 안에 들 수 있다면 거의 모든 대학 모든 과를 노려볼 수 있지만, 양궁 등의 체육 계열에서 전국 100등 정도로는 국가대표는 고사하고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들지 못한다. 재미있는 게임을 마음껏 하면서 돈과 명예까지 얻을 수 있는 직업으로 비춰지는 프로게이머는 그 이면에 게임단에 입단 후에도 프로 연습생만 전전하는, 심지어 학창 시절 내내 게임만 하고도 입단조차 노려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생활고를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오는 영화계는 말할 것도 없다. 단편 소설 <흩어지는 구름>에서도 이를 다루고 있다.

영화 감독을 꿈꾸던 사람과 추락한 어느 영화 감독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영화계에 데뷔를 알렸던 ‘우재현’이라는 영화 감독이 어느 중국의 허름한 여관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호재’가 ‘나’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의 강렬한 인상이 무색하게, 상업성이 떨어졌던 거의 영화에는 점차 투자의 손길이 줄어들기 시작해 끝내 영화판에서 그의 존재는 잊혀졌다. 이후 중국의 어느 프로덕션으로부터 드라마 감독 제안을 받고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중국에서의 그의 작품이 없다는 것과 허름한 여관에서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여기서도 끝내 그의 삶은 해피 엔딩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호재’는 우재현 감독의 3번째 영화에서 조감독을 맡아 이를 계기로 영화 감독의 길로 접어든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동거인인 ‘나’ 역시 직장을 다니면서 영화인을 꿈꾸는, 대학 시절 졸업 작품을 보고 지도 교수가 개인적으로 불러다 유학을 권유했을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호재의 두 번째 영화가 처참하게 흥행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은 이래 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나리오 한 줄 적어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결국 호재와 함께 그렸던 미래를 포기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어제 고속버스에서 물었지. 우 감독 장례식에 갔느냐고."

끊임없이 달그락거리는 소란 속에서 호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술이 깼는지 얼굴을 해쓱했고 목소리엔 힘이 빠져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때문인지 외려 주눅 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실은 가긴 갔어. 가긴 갔는데, 빈소 앞에서 발길을 돌렸어." / ".... 왜 그랬어?" / "무서웠어." / "..." / "무섭더라, 내 미래 같을까봐. 내가...." / "..."

"내가, 기대고 싶었나 봐. 그래, 알아. 너무 앞서갔어." / "..."

- 본문 中 


봉준호 감독처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거장의 화려함의 이면에는,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수많은 ‘우재현’, ‘호재’가 있을 것이다. 잊혀지고, 사회에서 소외받는 계층의 한 부분이 되는, 그런 사람들. 한 때는 여기가 자신이 걸어야 할 길, 자신이 몸바쳐야 할 곳이라고 믿었던 것에 배신당한 사람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합당한 단어는 과연 무엇일까. 애매한 재능에 배신당한, 혹은 재능이 있었음에도 시대를 잘못 타고났거나 운이 따라주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합당한 위로의 말은 무엇이 있을까. 사회는 열심히, 자신이 믿어온 길에 충실했지만 실패한 사람들을 조금 더 보듬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성공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건강한 사회는 굳이 성공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요새 한다. 자신의 꿈이 좌절되더라도, 밑바닥까지 추락하지는 않아도 되는, 그 아래에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그물망이 펼쳐져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물론 이는 한 편으로는 매우 감상에 젖은 생각이다. 경쟁이 있으면, 낙오자가 생기는 것은 필연이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 해도, 낙오는 뼈아프고 냉혹하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져, 그 존재를 알고는 있지만 외면하는, 그래서 소외를 감당하며 살던 작은 숨들. 우리의 하루를 달려가기도 힘든 현실이지만, 그 틈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숨소리에도 한 번쯤은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귀기울임은 한데 모여서 어딘가, 더 높은 어딘가에서는 구원의 무언가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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