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사소한 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565회 작성일 26-03-20 04:58

본문

사소한 일

- 아다니아 쉬블리 –

 

 사소하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일, 굳이 되짚지 않아도 되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우리는 ‘사소하다’ 판단하며 바쁜 일상 속 기억의 저 편으로 넘겨버리고, 누군가 그 사소한 일을 들추어 보려 할 때 ‘별것도 아닌 일’로 귀찮게 한다 여기거나,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며 꺼려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문제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그 판단의 권한은 강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목소리가 큰 사람일 수도, 무력을 가진 사람일 수도 혹은 능력이 출중하거나 나이가 많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사람들. 사소하다는 말은 언제나 그것을 기록하는 쪽의 입장이 된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은 팔레스타인 작가에 의해 쓰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유대인의 나라’가 세워진 기념비 적인 날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나크바’라 불리는 대재난이 일어난 이스라엘 건국의 시점 1년 후의 이야기와 그로부터 25년 후의 이야기가 각각 1부와 2부로 나뉘어 서술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단정하며 평가하기보다, 이 소설에서는 동일한 사건이 각각의 시점과 시선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묘사한다.  

 

1부는 1949년 네게브 사막에 주둔한 이스라엘 군 부대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부대는 사막을 순찰하며 베두인들을 색출하고, 발견된 이들은 확인이나 심문 없이 제거된다. 임무를 수행하는 지휘관은 영토를 잘 지켜내기 위해, 방치 당한 땅을 가꾸어 그들 민족의 평안한 안식처를 가꾸기 위해 매일같이 사막을 순찰하며 체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 베두인 소녀가 포로로 끌려온다. 지휘관은 더럽고 냄새나는 소녀를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혔으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베두인 마을로 데려다 주기 전까지 데리고 있으며 주방에서 일을 시킬까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소녀에게 닥친 일은 강간과 총살이었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들은 비극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특별한 강조 없이, ‘오늘도 날씨가 더웠고, 사막에 순찰을 나갔다.’ 와 같은 흐름으로 평범하게 서술된다. 소녀가 당한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잔혹한 일들이지만. 지휘관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1부는, 그저 하루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 속 하나로 차분하게 묘사가 되며, 오히려 지휘관이 밤중에 물린 벌레로 곪아 나가는 다리의 고통과, 사막의 더위가 세밀하게 묘사되며, 가혹한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지휘관의 모습이 인상깊게 서술된다.

 

2부는 그로부터 사반세기 후 갈등이 일상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여성 화자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그녀는 우연히 이 사건에 대한 짧은 기록을 접하고, 그 사건이 발생한 날이 자신이 태어난 날짜와 동일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날짜가 같다는 단순한 우연으로 넘기지 않고, 사건 자체를 자세히 알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여성은 그 사건을 직접 더 확인하고 싶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같은 땅 위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허가구역 밖에서 벌어진 사건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은 쉽지가 않다.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타인의 신분증을 빌리고,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이동경로를 선택하며 어렵사리 기록에 적힌 장소를 찾아가지만, 마침내 도착한 장소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쟁 이후, 누군가의 억울하고도 비통한 죽음이 발생한 사건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어느 날 잠깐 있었던 ‘사소한 일’이기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성은 결국 별다른 것을 알아내지 못하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가구역 외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발견한 이스라엘 군인에게 사살당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2부를 읽는 내내 느꼈던 것은 답답함 이었다. 2부의 여성은 왜 ‘굳이’ 자신의 일도 아닌 일에 집착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인지, 이미 오래전에 지난 사건 하나를 자세히 파헤쳐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기에 허가구역을 벗어나며 무모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죽음까지 맞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덮으니 다시 보이는 이 책의 제목이 ‘사소한 일’이었다. 1부를 읽고 2부로 넘어가며, 나도 모르게 앞서 1부에서 강간당하다 죽은 소녀의 일이 그저 전쟁 중 발생할 수 있는 ‘그럴 수도 있는’일로 여겨지며 중요하지 않다 여겼기에 이어지는 2부에서도 2부 여성의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2부 여성에게 1부 소녀가 당한 일은 그저 그럴 수도 있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현재 그녀가 발 딛고 서있는 땅에서 발생한 같은 민족 아이의 일이었고, 당연히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지역이었음에도 이제는 통제에 의해 허가 받아야 하는 지역이 된 곳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2부의 여성의 행동은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기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안일하게 ‘사소하다’ 판단되어 사라진 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다시금 생각이 들었다.

 

1부에 묘사된 지휘관은 겉으로 보이기엔 굉장히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다. 무더위와 통증에도 순찰활동을 쉬지 않고, 매일 깨끗하게 샤워를 하며, 부대원들을 적절히 북돋을 줄을 알고, 공동체를 위한 비전을 제시한다. 심지어, 포로를 괴롭히는 부하들을 꾸짖으며, 포로 조차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의 시선에서 정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벌어진 행위들을 살펴보면 실로 역겨운 위선자일 따름이다.

부대원들에게 소녀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는 뒤로는 자신이 소녀를 덮친다. 그 후 소녀를 이송하는 척 하더니 사막 어딘가로 데려가 묻어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인격을 지키고 싶은 것인지 목숨을 끊는 마지막 사살과 매장과 같은 일은 부하의 손으로 하게 한다. 마치 ‘나는 그렇게 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라는 태도로 말이다. 담담하고 차분히 사건을 정리하고 나서는 별 일 없던 듯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무 생각 없이, 1부의 지휘관의 시선에 사로잡힌 채 2부로 넘어가게 되면 이들의 덤덤함에 동화되어 2부의 여성의 행위에 답답함과 짜증을 느끼게 된다. 사건은 설명 없이 지나갔고, 폭력은 배경으로 처리된 그 흐름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마주한 2부의 인물은 불필요한 집착을 보이며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무모한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서를 바꾸어 2부를 먼저 읽고 1부를 접했다면 같은 장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라진 사건을 따라가려 했던 여성의 시선을 먼저 경험한 뒤라면, 1부에서 벌어진 소녀의 사건은 더 이상 무심히 지나갈 수 없는 것이 된다. 지휘관의 건조한 서술과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는 일상의 문장들이 오히려 그의 잔혹함을 강하게 받아들이게 했을 거다.  


때로 우리는 너무나 쉽게 타인과 시선을 같이한다. 강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본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에 손쉽게 ‘사소한 일’이라 무언가를 치부해버리기 쉽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사소하다’ 평가하고 뒤로 숨기며 잊어버리는 것이. 이들의 행위에 속아 함께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이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함과, 누군가의 행위를 보고 ‘굳이’ 라고 평가하는 일이 본인의 시선 하에 타인을 바라보며 함부로 일의 가중을 평가하는 선을 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며 감상을 마무리 해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