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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죽이러 오는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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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635회 작성일 26-04-1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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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죽이러 오는 달팽이 ”

- 벳시 홈버그 著 「Over Thinking」을 읽고 -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자신의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고, 믿는다.

마치 숨을 쉬듯, 의식하지 않아도 이어지도록 약속된 어떤 흐름처럼 말이다. 그러나 생각은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두 개의 시스템이 끊임없이 경합하여 만들어내는 결과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중앙 집행 네트워크 (CEN, Central Executive Network)’와 ‘기본 모드 네트워크 (DMN, Default Mode Network)’가 바로 이 두 시스템이다.

 

중앙 집행 네트워크는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실제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능을 중점적으로 수행하는 영역이다. 반면 기본 모드 네트워크는 과거를 되짚고 미래를 상상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자동 연상 시스템이다. 끊임없이 떠올린다는 특성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이 기본 모드 네트워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인간의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관이다. 인체의 생존을 위한 전체 에너지의 약 20%를 사용할 만큼, 중요성에 비례하여 이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명확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꼭 필요한 기능에는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줄이거나 약화하는 것.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중앙 집행 네트워크는 중요한 순간에 살아남기 위해 더욱 정교해진 영역이고, 기본 모드 네트워크는 어쩌면 과거의 인류에는 필요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과도하게 남아 있는 잔재일지도 모른다.

 

물론 기본 모드 네트워크가 완전히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배우고, 현재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미래를 다양하게 상상하며 대비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네트워크가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할 때이다. 기본 모드 네트워크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쉽게 멈추지 않는다(멈출 수 없다). 하나의 생각에서 또 다른 생각으로, 그리고 또 다른 걱정으로 이어지며 끝없는 고리로 무거운 사슬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문제들까지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끌어안게 된다.

 

최근 해외 SNS 유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가정형 밸런스 게임 질문이 있다. 평생 자신을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살인달팽이를 피해 사는 대신 100억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평범하게 살 것인가. 얼핏 보면 단순한 장난 같은 질문이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철학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고민이 숨어 있다. 질문에 대해 전자를 선택하더라도, 달팽이는 매우 느리기에 실제로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존재 자체가 아니라, ‘언젠가 그 존재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전자의 선택은 순간적인 부귀영화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그 보이지 않는 위협을 평생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유치한 질문은 놀랍게도 우리의 고차원적인 사고 방식과 닮아있다. 기본 모드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생각들 역시 대부분은 현실에서 마주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막상 닥치더라도 실제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마치 반드시 일어날 일처럼 받아들이고, 그 걱정과 불안의 심연에 스스로를 몰아넣는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함.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낸 내 안의 살인달팽이와 같다.

 

달팽이는 느리다. 그러나 우리의 머릿속에 한 번 자리 잡은 살인달팽이는, 곧 우리의 생각은 그 무엇보다도 빠르고 집요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위협보다,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위협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현실의 위험에는 비교적 잘 대처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위험에는 쉽게 휘둘리고 굴복한다. 마치 절대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달팽이를 피해 평생을 불안 속에서 보내는 선택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해결책으로, 생각 자체를 없애라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 생각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중앙 집행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명확히 구분하라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중앙 집행 네트워크의 생각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것이고, 기본 모드 네트워크의 생각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오래된 시스템의 반응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둘 중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너무 자주 기본 모드 네트워크의 목소리를 진짜 ‘나의 목소리’로 착각한다. 부족하다, 실패할 거다, 잘 안될 것이다 ― 이런 생각들은 사실 내가 의도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과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의 부산물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미 충분히 많은 달팽이들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결국 현실의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들을 끝없이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협하게 두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 즉 지금 이 순간 꼭 해야 할 일과 마주해야 할 현실은 점점 흐려질 지도.

 

하지만 나는 생각을 줄이겠다고 다짐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한 번 더 의심한다. 이것이 정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생각인지, 아니면 단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 어처구니 없이 만들어낸 것인지. 혹시 지금 나를 쫓아오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굳건히 잘 버티고 있는 나를 무너뜨릴 위협이 아니라, 아주 느리지만 내 안에서 부풀려진 달팽이 따위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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