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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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읽고 -
1945년 8월 17일에 처음 출판된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은, 20세기 영미 문학사의 명작중 하나이며, 가장 탁월한 정치 풍자 소설이자 디스토피아적 우화이다. 해당 책은, 워낙 유명하고 학생 필독도서로 지정되어 있어, 옛날 초등학생일 적 읽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같이 싸운 동료들을 쫓아낸 나폴레옹은 나쁜 돼지이고, 쫓겨난 스노우볼과 희생된 말 복서가 불쌍하다 라는 일차원적인 느낌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커서 다시 책을 보니 해당 책에는 훨씬 많은 사회 및 정치 비판 내용이 함유되어 있었고, 현실에 빗대어 은유한 상황이 굉장히 많았다.
일단 조지 오웰은,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했으며,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비판하는 동시에 권위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강한 경계심을 지니고 있었다. 오웰은, 자신이 지향하는 철학이 소련 공산주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분석하여, 이를 짐승들의 반란이라는 우화적 틀, '동물농장'에 정교하게 이식했다. 농장에서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일으킨 혁명은,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상징하고, 작중 나오는 싸움들은 러시아 내전과 1, 2차 세계대전을 암시한다. 그리고, 결국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라고 명시했던 7계명 중 하나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라는 구절로 바뀌고, 동물들은 스노우볼 일당과 인간들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서, 혁명이 원래 타도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적 착취 체제로 완전히 회귀하였음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나게 된다.
소설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사회 및 정치체계 관점에서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항상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어 발생하는 것 같다. 사회주의 또한, 마르크스가 처음 주장했을 때는 자본주의의 착취에 지친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았으나, 결국 소수의 인간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그 뜻은 변질되어 몰락하게 되었다.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대우받는다는 사회주의의 이상은 지친 사람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꿈이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동일 노동, 동일 분배가 되려면 결국 분배해야 하는 주체가 존재해야 하는데, 이 세상은 밥그릇 갖고 밥 나눠 주는 사람의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결국 다시 노동자와 지배 계급으로 계층이 나누어 질 수 밖에 없던 구조인 것이다.
나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면 불편한 진실이라 하여도 애써 무시하지 말고, 그 사실을 인정한 다음 더 나아갈 방법을 고민해 보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가 애써 무시하려 했던 것은 바로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곳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잘생기게 태어나고, 누군가는 더 머리가 좋게 태어나고, 누군가는 더 능력 있게 태어난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진실이다. 그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두고 모두에게 동일 노동을 시키고, 동일 분배를 진행하려 하였으니 자연스레 사회에 금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더 많은 부를 창출할텐데, 자연스레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불만이 터져나올수밖에 없다. 현실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 따르면, 자연적으로 사람의 능력에 따라 사회에서의 위치와 소유한 부가 달라지게 된다. 꼭 능력이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환경이나 운에 따라 좌우될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사회의 모든것을 차지하고 좌지우지 하게 놔두는게 맞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였으며, 너무나 가혹한 착취에 의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니 말이다. 이상적인 사회는, 능력있는 자들이 부를 창출하고 그를 통해 낙수효과로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까지 그 수혜가 돌아가는 형태일테지만, 극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욕망은 자신이 가진 것을 쉬이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놔두면 사회를 지탱하는 지반 계층이 붕괴하게 되어, 사회 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부자이지, 가난한 사람이 모두 죽어 없어지면 부자라고 해서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계층을 인정하고, 최대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 민주 사회에서 기득권이 사람들이 정치 및 사회에 관심을 갖고 올바른 정보를 얻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전략일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만큼 현대 사회의 견제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흐리게 만드는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약자라도 충분히 높은 사회 계층의 사람을 견제할 수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돌고 돌아서 다시 말하자면, 이 사회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대부분은 약자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충분히 객관화 하여 약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강자들을 견제할 수단을 취하는 것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길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운명은 태생부터 정해진다는 패배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성공해서 사회적 계층이 높아진다면, 그곳에서는 또 거기에 맞는 행동을 취하면 된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망각하고 애먼 곳을 바라보며 잘못된 선택을 내리는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동물 농장의 동물들은 농장주였던 존스를 쫓아내기 보다는, 그대로 놔두되, 동물들을 착취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다같이 두들겨 패서 정신을 차리게 하거나, 그를 쫓아내더라도 새로운 통치자를 견제할 수단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것도 이상론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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