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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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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건희
댓글 0건 조회 380회 작성일 26-05-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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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도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가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선명하게 남는 줄거리보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먼저 남았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작품은 처음부터 구체적인 의미를 제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비껴 가듯 공허한 대화와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산만하고 무심하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지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겨 몇몇 해설을 찾아보기도 했고, 다시 문장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모호함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갖고 있던 느낌은 무력감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의 탄생을 선택하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몸으로, 어떤 환경 속에서 태어날지 우리는 정할 수 없다. 성별도, 외모도, 지능도, 부모도, 시대도 대부분 우연처럼 주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삶은 처음부터 거대한 비자발성 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삶이란 대단한 의지를 품고 시작된 여정이라기보다, 어쩌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세상에 던져진 뒤 그 다음을 견뎌 내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이미 고통과 부조리가 가득한 세계에 선택 없이 놓인 존재에게, 처음부터 어떤 대단한 의미가 주어져 있다고 믿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는 무의미하다”는 생각 앞에서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꿈을 꾸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과정조차도 더 큰 차원에서 보면 별다른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사람 사이의 오해와 거리감을 느낄 때, 내가 붙들고 있는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하거나 우스운 것으로 여겨질 때, 이 무의미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누군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나는 타인과 나 사이에는 끝내 메워지지 않는 간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의 기억과 상처 속에서 살아간다. 같은 장면을 보아도 다르게 느끼고, 같은 말을 들어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공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상대에게는 무가치할 수 있고,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의미가 다른 사람 눈에는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이 책 속에서 알랭과 그의 어머니가 나눈 대화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을 미안해한다. 그 미안함 속에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이 고단한 세계로 누군가를 밀어 넣었다는 죄책감에 한 말이지 않을까 싶다.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상처받고, 외로워하고, 견디는 일이라면 누군가를 이 세계에 오게 했다는 사실이 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랭의 태도는 그 절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원망으로 응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향한 고소나 탄식 대신,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태어남의 우연함을, 세상의 부조리를, 관계의 불완전함을, 그리고 그 속에서 겪는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책은 “삶은 무의미하니 절망하라”라고 말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무의미를 지나치게 비극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하는 작품에 가깝다고 느꼈다. 모든 것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는 태도, 삶을 설명 가능한 목적과 성취로만 정리하려는 태도에서 한 걸음 물러서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삶이 반드시 특별한 이유를 가져야만 한다고 믿는다. 어떤 날은 그냥 밥을 먹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실없는 농담을 하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렇게 하루를 버텨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무의미는 삶을 텅 빈 것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창한 목적에 짓눌리지 않고 현재를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모르고, 완전히 이해받을 수도 없으며,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는 웃고, 사랑하고, 누군가를 용서하고, 자신을 달래며 하루를 살아낸다. 어쩌면 삶의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의미를 소유해서가 아니라, 무의미를 견디고도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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