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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끝까지 프라다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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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수
댓글 0건 조회 382회 작성일 26-05-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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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끝까지 프라다를 입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처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를 보았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인 앤디에 몰입한 채 그녀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았다. 런웨이라는 세계는 낯설고 과장되어 보였고, 미란다는 지나치게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시선은 서서히 이동한다. 처음에는 단지 버텨내는 이야기처럼 보였던 것이, 어느 순간에는 인정받고 살아남는 이야기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미란다에게 인정받는 앤디의 모습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성공에 대한 선망과는 조금 달랐다. 미란다는 분명 타인에게 가혹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쉽게 흔들리는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기준을 유지하는 사람. 무엇인가를 저 정도까지 밀어붙이며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당시의 미란다는 단순한 상사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절대적인 전문가처럼 기억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후속작을 보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영화의 중심이 더 이상 앤디의 성장 서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이번 작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번의 미란다는 이전과 미묘하게 달라져 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총괄 승진을 앞둔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신중해져 있다. 과거의 미란다였다면 굽히지 않았을 순간들에서조차 어느 정도는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물론 여전히 그녀는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완벽함 이면에 존재하는 피로와 긴장이 함께 드러난다. 이전의 미란다가 마치 시대 자체를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였다면, 이번의 미란다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 버티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런웨이가 예산 삭감과 사업 철수 위기에 놓이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선명해진다. 시대는 변했고, 패션 매거진이라는 매체 역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유지하지 못한다. 미란다가 평생 지켜왔던 기준들 역시 점점 낡아 간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를 단순히 “구세대의 몰락”처럼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세계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사람의 태도에 더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과정 속에서 미란다가 뒤늦게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는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으로 남았다. 가족, 그리고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나이젤. 1편에서의 미란다는 사람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필요하다면 가까운 사람조차 희생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해왔고, 그 냉정함은 미란다라는 캐릭터의 핵심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자신이 놓치고 지나왔던 관계들의 의미를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방식 역시 예상보다 조용하고 인간적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단순한 동정이나 안타까움이 아니라, 오히려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씁쓸함이었다.


분명 미란다는 많은 것을 희생했다. 인간관계와 가족, 평범한 삶의 시간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단순히 “성공의 대가”처럼 단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란다는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단지 권력이나 명성을 위해 버텨온 인물이었다면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런웨이를 자신의 삶 자체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 역시 쉽게 그녀를 비판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묘한 양가감정이 남는다.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살아야 했는가에 대한 씁쓸함이 남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저 정도까지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동경이 남는다.


특히 마지막의 미란다는 이전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런웨이라는 패션 잡지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 역시 업계 최정상의 자리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다시 앞으로 걸어간다. 그것은 과거처럼 절대적인 자신감에서 비롯된 태도라기보다, 자신이 사랑했던 세계를 끝까지 붙잡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아마 그 모습이 깊게 남았던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단순히 성공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를 보고 나니 더 이상 앤디만 바라보며 영화를 보게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미란다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성공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 시대가 변해도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사람. 그리고 뒤늦게 자신 곁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사람.


그래서 이번 작품은 단순한 패션 영화라기보다, 오랜 시간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살아온 한 사람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세계를 붙잡고 나아가려는 이야기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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