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노력은 왜 하는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487회 작성일 26-05-15 22:32

본문

영화 '100m' 감상문

 

영화 '100m'는 단거리 육상이라는 소재를 통해 노력의 의미를 깊이 있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몇 초에 100m를 달렸는지가 아니었다. 실제로 영화에는 100m를 몇 초에 달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이는 작품이 기록 자체보다는 달리는 행위와 그 행위에 담긴 마음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노력은 왜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해했다. 주인공 토가시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에게 달리기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100m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면 전부 해결된다”는 대사는 토가시가 달리기를 바라보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현실 속 문제를 돌파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토가시의 재능은 점점 예전 같지 않게 된다. 부상과 슬럼프가 찾아오고, 자신이 가르쳤던 코미야는 어느새 자신을 앞질러 간다. 자신이 코치해주는 또 다른 신예마저 자신을 추월한다. 한때 천재였던 토가시는 육상 선수로서 계약 갱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노력과 재능이 언제나 보상받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열심히 해도 이기지 못할 수 있고, 재능은 영원하지 않으며, 더 빠른 사람은 계속 등장한다.


이 지점에서 카이도의 말이 인상 깊었다. 카이도는 15년 동안 만년 2등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30대까지 현역을 이어온 인물이다. 그는 토가시에게 “현실에서 도망친다”고 말한다. 여기서 현실은 자이츠라는 최고의 선수를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 새로운 신예들이 계속 등장하는 현실, 나이를 먹었다는 현실, 시기를 잘못 만나 2등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카이도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바라본 뒤, 그 현실을 문제로 인식한다. 카이도가 말한 도망은 현실도피와 다르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고 믿고, 그 믿음을 배반하는 현실을 문제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뒤에도 계속 달리는 사람이다. “현실로부터 도망치려면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이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현실을 보지 못한 채 달리는 것은 도피일 수 있지만, 현실을 알면서도 계속 달리는 것은 대단한 의지다.


이 영화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도 닮아 있다. 시지프는 산꼭대기까지 돌을 밀어 올리지만, 돌은 매번 다시 굴러떨어진다. 언뜻 보면 그 행위는 끝없는 반복이고, 아무런 결실도 없는 노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뮈는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100m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빨라져도 또 다른 벽이 나타나고, 어떤 목표를 넘어서도 새로운 한계가 기다린다. 그래도 다시 출발선에 서는 행위 자체가 삶을 채운다.


코미야의 질문은 이 주제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코미야는 성장해서 1인자 자이츠의 자리까지 위협하는 신예가 된다. 하지만 그는 빨라질수록 허무함을 느낀다. 기록을 내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결국 다시 굴러떨어질 돌이라면, 그것을 밀어 올리는 행위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은 노력하는 사람이 한 번쯤 마주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든 연구든 운동이든, 하나의 목표를 넘어서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긴다. 성취는 오래 머물지 않고, 노력은 때때로 허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그 허무함 속에서도 답을 찾는다. 토가시는 다시 말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100m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면 해결된다고. 이 말은 실제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빠르게 달리고 싶다는 의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태도이다. 노력은 어떤 완전한 정답에 도달했을 때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노력은 문제를 마주하고,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순간 이미 의미를 가진다.


특히 영화에서 100m 기록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육상을 다룬 작품이라면 몇 초대를 기록했는지, 최고 기록을 경신했는지가 중요한 장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100m'는 기록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이는 이 작품이 결과의 수치보다 달리는 사람의 마음, 계속 달리게 만드는 이유, 그리고 노력의 방향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 100m는 기록을 측정하는 거리가 아니라, 각 인물이 현실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결국 '100m'는 노력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었다. 이기기 위해 달리지만, 이기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빠르기 위해 달리지만, 몇 초에 도달했는지가 전부도 아니다. 그럼에도 달리는 이유는 그 행위가 자신이 현실과 맞서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돌이 다시 굴러떨어져도 돌을 밀어 올리는 투쟁 자체가 삶을 채울 수 있듯이, '100m'의 인물들은 계속해서 출발선에 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좋은 스포츠 애니메이션이면서 동시에 좋은 성장 영화였다. '100m'는 노력의 허무함을 충분히 보여준 뒤, 그럼에도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그리고 100m를 달리는 인물들,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나 역시 끝없이 반복되는 출발선 위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