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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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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347회 작성일 26-05-1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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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

- 오카 기요시 著 「수학자의 몰입」을 읽고 -

 

 

 수학의 발견에는 발견 자체를 드러내 보여주듯 기쁨이 수반된다. 그 기쁨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나비를 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들판을 헤매다가, 나무에 앉은 아름다운 나비와 마침내 맞닥뜨렸을 때의 황홀한 느낌과 비슷하다!”

 

 

 학창 시절 나는 한동안 수학이라는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다. 단순히 문제를 잘 풀고 시험에서 점수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아직 누구도 풀지 못한 난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매혹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명했던 책인 사이먼 싱(Simon Singh)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고 난 뒤에는, 수학이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인간이 평생을 바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한 편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 책을 읽고 난 뒤로 나는,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를 꼭 해결해 보겠다며 ‘리만 가설’이나 ‘P-NP 문제’를 공부하기도 했었고,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여전히 증명되지 않은 콜라츠 추측(임의의 자연수 n에 대해, 짝수면 2로 나누고 홀수면 3n+1을 구하는 반복을 진행했을 때, 이 조작을 유한히 시행하면 1이 된다), 골드바흐의 추측(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표현 가능한가), 쌍둥이 소수(차이가 2인 소수의 쌍이 무한지 존재하는가), 메르센 소수(소수 p에 대해 2^p-1 형태의 소수는 무한히 존재하는가) 같은 난제들을 붙들고 한동안 노트를 빼곡하게 채워가며 머리를 끊임없이 굴려보곤 했었다.

 

 

 물론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당시의 나는 단순히 그 문제들을 ‘해결한다’ 보다는 그 문제들을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사로잡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교 수업을 듣다가도 문득 숫자 하나가 떠오르면, 오늘 잠들기 전까지 그 규칙을 찾겠다며 종이에 수열을 적어 나가기도 하고 복잡한 방정식을 나름대로 쭉 정리하기도 했었다. 당연히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난 그런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그때 그 감각이,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다시 찾아올지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

 

 

 발견의 순간은 언제 찾아오는가?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가 서서히 풀 때다.

 

 

 우리는 흔히 몰입을 의지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이를 악물고 문제 앞에 앉아 끝까지 버티는 것이 집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일본의 수학자, 오카 기요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억지로 붙잡고 있는 상태만이 몰입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제를 마음속에서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는 일에 가깝다고 말이다. 당장 답이 나오지 않아도, 때론 잠시 손을 놓더라도, 그에 대한 생각의 흐름 자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우리도 모두 그런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다. 무언가를 며칠이고 붙잡다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포기하듯 내려놓았는데,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갑자기 해결의 실마리가 떠올랐던 그런 순간들 말이다. 그저 길을 걷다가, 거친 운동을 하다가, 잠자리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누군가를 마주치다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무언가 연결되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오카 기요시는 이러한 순간들 또한 자연스러운 발견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 또한 연구 도중 몇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 보였다고 한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저 뒤편에서의 생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말하는 ‘정서적 수학’이라는 표현은, 완전히 상반된 의미를 가진 두 단어가 어색하게 어우러진 표현이더라도 꽤 의미 있는 말이었다. 우리의 통념에서 수학은 차갑고 논리적인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오히려 직관과 감정,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수학적 발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수많은 난제를 해결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완벽한 논리의 끝에서 탄생하기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나 위화감(違和感)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인가 이상하지만 끌린다는 감각, 혹은 이 방향이 뭔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수학자를 해답의 출발점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의 나는, 그때 그 순수했던 시절처럼 막연히 난제를 동경하기보다, 훨씬 더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분야 속에서 현실적인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수많은 데이터와 수식, 실험 결과 속에서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석해야 하고, 때로는 아주 작은 변수 하나를 조정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시간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정답다운 정답’만을 향해 달려가느라,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의 호기심과 탐구의 즐거움을 잃어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카 기요시의 수학적 개념에서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인 ‘부정역 아이디얼’은 기존의 체계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 모순과 불완전함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어쩌면 연구란 결국,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틀을 의심하면서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 지금 마주한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졌는가에서 판가름이 날 수도 있다. 익숙한 방식만 반복하며 안전한 해답만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혹은, 하나의 문제를 너무 붙잡고만 있으면서 잠시 내려놓고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수학자의 삶은, 어느 한 분야에서 천재로 인정받는 뻔한 형태가 아니라, 끝없는 고뇌와 발견이 순환되는 한 편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 시절 내가 수학 난제들을 붙들고 있었던 이유도 꼭 답을 얻어 그에 대한 인정을 받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며 스스로 질문도 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아름답게’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좋았으니까.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는 답이 없는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 중 극히 일부분을 평생 동안 붙잡고 있을 내 삶 또한, 끝내 단 하나의 완벽한 답도 얻지 못한 채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시간 자체도 역시 의미 없는 정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처럼 바짝 조이고 있던 끈을 잠시 풀어두는 시간이 오더라도, 생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문득, 나무 위에 내려앉은 나비처럼 그토록 찾아 헤맸던 나만의 해답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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