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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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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386회 작성일 26-05-1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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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을 읽고

 

안톤 체호프

 

 

 인간의 삶은 행복하고 희망찬 일들로 가득 차 있기를 바라지만, 그만큼 어둡고 절망적인 일도 필연적으로 겪기 마련이다.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앞서 상반된 두 가지 관점을 한 작품 내에 동시에 조명하면서 의도적으로 어느 한 정서에 치우치도록 힘을 주지 않는 점이 독특하다. 그러다 보니 체호프의 간결한 문체에 빠져들어 집중하며 소설을 읽다 보면, 복잡미묘하고 씁쓸한 내면의 익숙한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허무하게 등장인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결말을 맺을 때 독자인 나조차도 연민을 느낄 겨를이 없어서 ‘이게 뭐야. 내가 뭘 읽은 거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길고 헷갈릴 만한 러시아 배경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평소와 달리 전혀 거슬리지 않았을 만큼 이야기가 재밌었고, 단시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단편집이었다.

 

 

  체르뱌코프의 배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로 그는 문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흐느적흐느적 밖으로 걸어나갔다.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기며 집에 돌아온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 죽었다.

'관리의 죽음' 중에서, 1883

 

 

 앞서 언급했지만 다시 말하자면, 체호프의 작품 속에서 선과 악, 지혜로움과 미련 무지함을 대변하는 양가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들의 대립이 분명 구분되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특정 인물에 이입이 되어 전혀 동화되지 않도록 하는 작가의 문학적인 설계가 돋보였다. 그는 그저 삶의 명암에 대해 ’전시’했을 뿐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독자들의 감성을 조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그걸 알아챘을 때, 요즘 유난히 드물었던 낯선 해방감과 찰나의 자유로움을 나는 느꼈고, 이것이 곧 차갑고 절제된 문체에 담긴 체호프의 섬세하고 따뜻한 배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술 논문도 그렇고, 일상 속 대화도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나 독서를 통해, 혹은 어른이나 주위 환경을 통해 매번 저자나 발화자의 숨은 의도와 맥락을 파악하도록 끊임없이 훈련을 받으며 자란다. 사실 이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때로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이것의 체득 유무가 곧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가치관이 정립된 한 인간으로 성장할지, 아니면 그저 일차원적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으로 남을지를 구분 지어주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드는 생각은 과학 기술과 AI 발전으로 더 편리하고 빠른 세상이 온 것은 확실하나, 남에게 속고 남을 속이기 더 쉬워진 매체가 쏟아지는 환경에서 어린 자녀가 올바른 생각으로 미래를 잘 살아가도록 교육하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본래의 가치가 훼손된 교육 헌장과 뒤틀린 사제 관계에 관한 사건 보도들, 부끄러운 일을 자극적인 문구로 서술하여 관심을 끄는 언론들, 한 쪽으로 치우쳐 무논리로 우기는 사람들, 원색적인 비난으로 채워진 익명의 가짜 댓글들, 그 와중에 기사 내용과 무관한 단순 노출된 AI 광고들. 이 온갖 의도들이 빗발치는 오늘날의 혼란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자 우리는 계속해서 읽고 생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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