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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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효과
- 이상훈 著 『후각행복학』을 읽고 -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더워진 낮의 열기를 피해 시원해진 밤의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봄 꽃의 향기에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이다. 비록, 송화가루도 함께하는 시기인지라 마음 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둘 수는 없지만 퇴근 후 집을 환기하는 잠깐의 시간동안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옅은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 요즘 내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다. 하루 동안의 땀 냄새를 씻어 내리고, 건조기에 잘 마른 포근한 냄새가 나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바닥에 누워 잠시 바람에 불어오는 꽃 향기를 맡고 있으면, 얼마간은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는 본가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며 기분이 좋아진다. 이맘때쯤, 본가 뒷산의 아카시아나무도 언제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집 안 전체를 향기롭게 가득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특정 향기와 같은 감각적 자극에 의해 과거의 기억이 불러일으켜지는 현상을 우리는 ‘프루스트 효과’라 부른다. 특히 후각은, 시각, 촉각과 같은 다른 감각기관들과 다르게 시상(thalamus)을 거치지 않고 대뇌의 피질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후각 피질이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에 가까이 위치해 있다는 특징 때문에, 다른 감각들 보다 후각에 의해 불러와지는 기억과 감정의 반응은 다른 감각기관에 의한 것보다 더욱 빠르고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조향사로서 이러한 후각과 감정의 관계를 뇌과학적인 측면과 화학적 메커니즘을 토대로 설명한다.
후각은 감각기관의 시인(poet)이자 감정의 중요한 감각이다.
저자는 후각기억이 다른 감각에 의한 기억과 차이를 보이는 또다른 요소로 기억의 독특성과 간섭(Interference) 현상을 설명한다. 독특성은 특정 냄새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의 차이를 의미한다. 후각정보는 시각이나 청각 정보와 다르게, 여러가지 요인이나 물체에 의해서 형성된다. 같은 향기라 하더라도, 그 향을 맡는 온도나 습도, 주변에서 함께 있는 물건의 냄새, 향을 맡는 사람의 건강상태(비염 등)에 따라 다르게 맡아지기 때문에, 같은걸 반복해서 인식할 수 있는 다른 감각 대비 독특성이 오래 유지되며, 한번 사라지면 동일한 향을 다시 맡기도 어렵다는 특성이 있기에 특정 냄새가 어떤 특별한 사건과 관련하여 기억이 된다면 어느 순간 그 냄새를 다시 맡았을 때, 해당 사건에 대한 기억이 쉽게 연상된다는 점이다.
후각의 간섭 현상은, 특정 냄새에 대한 어떤 연상이 확립되면, 이후 또 다른 연상의 학습을 방해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아카시아 향기는 대전에 내려와서도 매년 맡고 있지만,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걸었던 갑천 길의 산책기억이 떠오르기 보다는 본가에서의 추억이 언제나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어떤 냄새는 단순히 좋은 냄새라는 감각을 넘어, 특정한 시절의 감정과 분위기 전체를 함께 품으며 우리의 기억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렇게 저장된 기억들은 소중한 감정으로 기억 저편에 숨어있다가, 우연히 코 끝을 스친 향기로 인해 갑자기 회상되며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그래서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순간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은 단순히 냄새 자체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향기 속에 과거의 안정된 시간과 감정이 함께 저장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한다고 여겨왔던 향들은 모두 지나온 시간 속 행복했던 순간들을 품고 있던 향들이었다.
라일락 꽃향기는 대학시절 동아리방과 강의실을 오가는 곳에 있던 정자에서 많이 맡았기에, 새내기 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고, 가을의 바삭한 낙엽냄새는 우리 강아지와의 즐거웠던 산책을 떠올리게 되며, 시원한 유칼립투스 향은 첫 자취방에서의 추억을, 옅은 보리차 향과 함께 하는 가벼운 훈연냄새는 아빠와의 등교시간이 떠오르는 그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 말이다. 쉽게 잊히고, 신경써서 떠올리지 않아도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다면 피식하고 웃게 되며 가슴 깊은 곳이 따듯해지는 그런 행복한 기억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건, 이런 작은 감각들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집 안에서 향과 음악만 추가되어도 행복감의 차이는 크다.
풀리지 않는 연구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도, 나중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유난히 더운 미소동 팹에서의 실험을 끝내고, 연구실로 돌아오기 위해 건물 밖을 나섰을 때 불어오는 한 줄기의 바람 덕에 한껏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그 속에 담겨있는 달콤한 향기를 맡는다. 요즘 길가에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었더라. 아마 나중에는 이팝나무 꽃 냄새를 맡으면 카이스트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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