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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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수능 문학 지문에서였다.
그때는 소설을 읽었다기보다는 문제를 풀기 위해 인물 관계와 시대적 배경을 분석했던 기억이 더 크다.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이 소설의 복간본을 보게 되었고, 시험 지문으로만 지나쳤던 작품을 다시 읽어 보고 싶어 책을 사게 되었다.
'혈의 누'는 청일전쟁으로 평양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옥련이라는 소녀가 가족과 헤어지며 겪는 일을 다룬 작품이다.
처음에는 오래전에 쓰인 소설이라 내용이 낯설고 읽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표현도 있었고, 등장인물들의 생각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답을 찾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옥련이 겪는 불안과 막막함이 전보다 더 눈에 들어왔다.
전쟁 때문에 평범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그 속에서 옥련이 낯선 곳으로 떠밀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작품에 집중하게 되었다.
옥련은 자신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려 부모님과 헤어진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불행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구조되고 일본으로 가게 된 뒤에도 옥련의 생활은 계속 순탄하지 않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고, 의지할 사람도 부족했다.
그런데도 옥련은 완전히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한다.
공부를 하며 자신의 삶을 이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일을 겪지 않는 것보다 그런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버티고 움직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련이 모든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우연한 만남 덕분에 위기를 벗어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도움을 받을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을 붙잡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배우려 했다는 점은 옥련 자신의 선택이었다.
나도 힘든 일이 생기면 상황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먼저 걱정하거나 피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이미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쉽게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옥련의 삶을 생각하면, 힘든 상황에서도 내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조건 절망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찾고, 필요하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옥련이 공부를 계속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았다.
옥련에게 공부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는 일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특히 여성이 제대로 교육받기 어려웠다는 점을 생각하면, 옥련이 배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자신의 미래를 바꾸려 했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 역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성적이나 대학 입시에서만 찾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으며 배움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 속에는 전쟁과 이별이라는 큰 불행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옥련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옥련처럼 큰 고난을 겪지는 않더라도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실패나 변화를 겪을 수 있다.
그때 상황만 원망하며 멈춰 있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고,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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