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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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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2,906회 작성일 21-12-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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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연상호 작

(+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 – 홍익희 저)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과 연상호 감독의 ‘지옥’이 전세계 스트리밍 1위를 오랜 기간 돌아가며 차지하고 있고 최근 LA에서 2년 만에 개최된 BTS 콘서트는 7만 석이 단시간에 매진되고 암표는 2천만 원에 거래가 됐다니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를 꿈꾸셨던 백범 김구 선생님께 ‘보고 계십니까’ 하고 당당히 묻고 싶을 정도다. 나는 넷플릭스를 잘 보진 않지만 ‘오징어게임’ 때와 마찬가지로 ‘지옥’ 역시도 외국인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6화로 구성된 비교적 짧은 서사임에도 현실감을 기반으로 야기된 긴장감과 몰입감이 대단했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가까운 미래 혹은 가상의 현재에 천사의 고지를 받은 인간이, 때가 되면 신의 사자들이라 불리는 괴수들이 나타나 이른바 ‘시연’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고 지옥으로 간다는 소재를 다룬다. 극 중 ‘정진수’는 이 같은 현상을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죄악과 혼란을 친히 벌하시고 질서를 바로잡으시려는 신의 의도라 말하며 ‘새진리회’라는 종교를 창시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에 두려움을 느끼던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이 곧 펼쳐진다는 그의 말을 믿기 시작하고 이들의 광기 어린 신념은 새진리회의 교리에 반하는 사람들에게 살인과 폭력이라는 비이성적인 행동까지 촉발하게 된다.

 

   나는 실제 종교의 창시와 발전과정 역시 연상호의 ‘지옥’에서 묘사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절대자나 초자연적인 힘, 절대적인 진리, 즉 신적 존재를 숭배하고 추종하거나 절대자의 힘에 기대어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깨달음 등을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태양신 헬리오스가 태양 마차를 타고 출퇴근한다 생각하려 했다. 그들에게 밤은 알 수 없고 두려웠기에 신적 존재의 출퇴근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생각하는 게 편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종교는 무지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창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종교는 정치적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사회적 기능 역시 가지며 도덕, 윤리, 관습법을 제공하고 학문의 발전과 교육까지 책임지기도 했다) 인간의 믿음은 두려움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개념이었고 그렇기에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알 수 없음에 대한 방어 기제를 발휘한 것이다. 종교의 창시자는 오묘한 이치들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현상들에 의미와 의도를 부여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연상호의 ‘지옥’에서 나오는 ‘새진리회’와 같은 종교의 창시 배경을 말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있어 교리의 진위는 관심사가 아니다. 미지에서 오는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두려움에서 비롯된 신념은 자칫 왜곡된 선민의식을 촉발할 수 있다. 어떠한 행동에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선민의식은 비이성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지옥’에서 역시 포교를 위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이는 ‘새진리회’와 달리 신의 의도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고 판단되면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화살촉’과 같은 집단이 발생했다. 시청자들은 화살촉과 같은 강경 집단의 출현에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럴듯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는 종교와 도덕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부 교집합이 존재하기에 분리될 순 없고 단지 구별만 가능한 것일까? 전자는 도덕과 종교의 이원론을, 후자는 견련론을 말한다. 이러한 집합론적 접근 이외에도 도덕과 종교 중 어느 것이 먼저 발생하였는지에 대한 역사적 접근과 사상으로서 도덕과 종료는 겹치지 않는 교도권 (Non-overlapping magisterium)을 갖는지에 대한 논의 역시 가능하다. 어찌 됐든 이러한 논의에서 가능한 답변 중 작품을 통해 연상호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종교의 본질은 도덕이 아니다? 아니면 종교는 세속윤리와 상충하지는 않더라도 도덕적 본성을 악하게 할 수 있다? 감독이 답안지를 공개하지 않았으니 시청자가 그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후자가 조금 더 그의 의도와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종교는 오히려 세속의 도덕과 상충한다’라는 의견과 가장 큰 차이점은 ‘설사 종교의 가르침이 세속윤리와 어긋나지 않더라도 종교가 사람을 덜 도덕적으로 만들 수 있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극중 새진리회와 같은) 종교가 말하는 도덕은 그들만을 위한 배타적 도덕이라 할 수 있겠다. 종교계 내부에서는 한없이 선하고 친절하며 호의적이지만 외부의 적대시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호의 없이 적대적인 집단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는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인류학자 앨런 피스케는 그의 저서 ‘선의의 폭력’ (원제: Virtuous Violence)에서 외집단에 대한 폭력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사실 종교는 그 종교가 발생한 시점의 도덕을 반영하지만, 도덕은 사회가 변함에 따라 변화해야 하므로 다양한 해석 중 무엇이 옳다 할 순 없겠지만 작품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또는 그럴듯한 상황을 꾸미면서 참고한 견해가 이것이 아닐까 한다.

 

   ‘지옥’은 그 인기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연’상호의 지‘옥’, 즉 연옥을 묘사하고자 하지 않았나 하는 견해가 가장 그럴듯했다.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으로 모두 곧장 갈 수 있을 만큼 착하지 않기에, 소죄에 의한 잠벌을 연옥 혹은 현세에서 지니게 되고 신의 사자들에 의한 ‘시연’이 바로 잠벌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연을 받은 사람들의 사체는 누가 봐도 사망했다 말할 만큼 불에 타 심하게 훼손된다. 6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연을 받은 한 여성이 부활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잠벌을 갚은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천국인가, 아니면 갚지 못한 이들이 추방되는 지옥일까. 천사는 고지를 통해 당신이 지옥에 가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니 결국 이들은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임을 고려하면, 세속적 도덕이 파괴된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은 오히려 지옥이 됨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럴 땐 영화나 책에도 작가의 답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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