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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사람 – 윤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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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2,790회 작성일 21-12-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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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사람 – 윤살구

이규섭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라는 평론이 익숙한 걸 보니 근 몇 십 년간 그런 작품이 어지간히 많이들 나왔나 보다. 가족의 정의가 당연한 것에서 모호한 것으로 변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시대에 따라 가족상이 변한다는 말은 마치 가족의 형태 변화가 큰 흐름을 따라가는 것처럼 들린다. 핵가족화라는 말이 대체로 그렇다. 큰 맥락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현대 사회의 가족이 그 이전의 가족과 가지는 가장 큰 차이는 정의의 확장과 다양성의 확보에 있다고 본다. 이른바 혈통에 의존하는 가계도 기반의 가족 구성에서 자유로워졌고, 또 그 규모가 다양해졌다. 그에 따라 가족이 가지는 의미도 말그대로 케바케(Case by case), 사바사(사람 by 사람) 인게 바로 현대 가족의 특징일 것이다.

 우리 가족은 분명 전형적인 핵가족 4인가구이지만, 아버지는 내가 어려서부터 유독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전통적인 가치관에 따른 말이라 생각한 나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지만, 왜? 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가족뿐이라거나,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거나 하는 그럴듯한 상투적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공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는 만큼 보편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우습게도 “가족이니까” 라는 엉터리 같은 대답이 가족은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말에 대한 가장 훌륭한 대답이 된다.

 아버지의 바램이 통한 건지 아니면 그저 자연스러운 결과인지 우리집은 여전히 그럭저럭 화목한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우리 가족’에 대한 것만큼 살갑지 못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혼자 남은 할머니를 뵐 때마다 묘하게 불편한 마음이 들면서 문득 깨달았다. 솔직히 말해서, 친구보다 할머니의 삶을 더 모른다. 조부모님이 어려서부터 직접 키운 아이들이 아니고서야 요즘 조부모님과 부모님처럼 가까운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저 보고 배운대로 늘 점잖고 예의바르고, 자주 뵙고, 또 가끔 안부인사 정도를 챙기는 손자였지, 막 살갑고 애정으로 대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소설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형적이고 메마른 우리네 일상도 잠깐의 여유속에 눈을 반쯤 게슴츠레 뜨고 바라보면 조금 몽환적이듯이, 소설 속 풍경도 현실과 판타지가 위화감 없이 어우러져 있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바다사람이라는 소개로 소설이 시작한다. 이른바 인어라는 거다. 이 말도 안되는 사실을 주인공은 덤덤히 받아들인다. 할머니의 옛 삶이 어땠는지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옛날에는 다 그랫는갑다 내지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있나보다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일들, 할머니의 기막힌 노래솜씨나 나이와 함께 찾아온 특이 질환들까지도 다 바다사람이어서 라는 이유로 쉬이 납득해버린다.

 소설 속에서 인어는 바다속에서 살아야 한다. 바다속에서 인어는 영생을 살 수 있다. 할머니가 늙고 병든건 육지사람들과 살아서고, 그래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바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할머니를 설득하려고 들이 닥친다. 하지만 할머니는 손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늙어가는 것도 병드는 것도 다 알고서 남기로 한거라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돌아가서 바다가 된다는 건 육지에서의 모든 것이 없어지는 거라고 했다. 그건 너희에게도 너희 엄마, 아빠, 할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실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내 죽음을 슬퍼해주렴, 얘야.”

 사회적 규정에 따라 가족을 이루지만 원수만도 못한 관계를 이루는 안타까운 사례가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런 사람들조차 결국 또 다른 가족을 이룬다. 꼭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다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한 형태의 가족을 만든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보여주고, 가족은 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안정적인 구심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친목모임과는 분명 다르다. 긴 시간 함께 해온 정와 유대감일수도 있고, 피로 이어진 관계라는 정통성 있는 근거에 의한 친밀감일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각 구성원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의식적으로 유대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혈연이라던가 함께한 시간 같은 것은 그러한 의지를 강화하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다. 그래서 가족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면 정말 가족이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된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형이 동생에게 한번이라도 더 연락하고, 자식이 부모님을 한번이라도 더 찾아 뵙는 것 같은 단순하지만 의식적으로 해야하는 귀찮은 일들에서 시작한다. 때때로 바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다는 점에서 회의감이 드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것들이 가족이라는 의식을 계속 이어가는 기본적인 것들이다.

할머니의 지난날은 어땠을까? 그러니까 내가 할머니와 만나기 전의 할머니의 이야기 말이다. 30년이 지나서야 문득 궁금해진다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매년 연말 연시에는 이래저래 할머니 댁에 방문할 일이 생긴다. 이번 방문때는 할머니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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