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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의 노인 – 에마 오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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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3,432회 작성일 21-08-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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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의 노인 – 에마 오르치

 

이규섭

 

 모두가 넌더리 치는 문제를 풀어낼 때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성취감인지 우월감인지, 아니면 그 문제를 푸는 과정의 즐거움인지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게 무엇이던 추리 소설은 이러한 욕구를 만족시켜주는데 최적화된 장르 소설이다. 의문의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왜 일어난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탐정의 모습은 영웅적 면모마저 보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탐정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추리소설의 역사를 따라서 조금씩 발전해온 클리셰들로 이루어져 있다. 파이프 담배와 사냥 모자로 상징되는 이미지는 물론이고 우리가 탐정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인간상은 사실상 대부분 그 유명한 셜록 홈즈의 영향 아래에 있다. 용의자들을 모아두고 그 앞에서 일장 연설을 펼치는 탐정의 모습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시작되었다. 반 다인이 내세운 ‘탐정소설 작법 20칙’은 추리 소설의 황금시대를 거치며 우후 죽순 솟아난 다양한 작품들을 정리하고 이후 등장하는 소설들에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토대 아래 탐정이라는 직업은 하나의 또렷한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장르 문학도 오랜 세월에 걸쳐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오면 사회 문화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이번 휴가 기간에는 여유가 생기면 읽으려고 미뤄두었던 추리소설을 꺼내 들었다. 에마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은 추리 소설로써 치밀한 면은 떨어짐에도 큰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이 장르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소설이기 때문이다. 바로 ‘안락의자 탐정’이라 불리는 캐릭터의 시초가 바로 이 소설에 등장한다. 홈즈를 필두로 한 주류 소설의 탐정들은 관찰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그리고 부족한 정보와 결정적 증거를 보충하기 위해 직접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과정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락의자 탐정은 이러한 기존의 탐정 이미지에 반기를 든 새로운 캐릭터다. 구석의 노인은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기껏해야 사건의 재판장에서 증인신문을 참관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전해 들은 이야기들, 즉 데이터만을 종합하여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고 이를 엮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간다. 살짝 억지스런 전개와, 반복되는 트릭이 아쉽긴해도, 총명한 눈빛으로 매듭을 만지작거리는 노인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또렷이 그려질만큼 캐릭터 성을 잘 살린 재밌는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 셜록 홈즈 시리즈에 푹 빠져서 탐정이 되고 싶다는 아이다운 꿈을 품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는 홈즈의 영웅적 면모 때문에 생긴 감정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하면 탐정이 될 수 있는까 고민을 시작하니, 그것이 애초에 필요한 직업인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막상 주변에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본 적도 없거니와, 경찰이 해결 못 하는 일을 해결해주는 사설탐정이라니, 타인의 업무능력에 따라 직업의 존폐 위기가 결정되는 그런 직업을 장래 희망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이가 조금 들어서 어린아이의 뜬구름 잡는 꿈이 잊힐 때쯤, 탐정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각종 매체에서 볼 수 있었던 현실 속의 탐정은 그나마 비슷한 일이란 게 결국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같은 뒤가 구린 일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전부인 일이었다. 애초에 탐정이라는 직업이 그렇다. 현실 세계에서 탐정은 의뢰를 받고 사건을 해결하는 ‘민간인’이다. 좀 더 명확하게는 ‘공무원이 해결하지 못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것이다.

탐정의 시초를 보면 이러한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 애초에 사설탐정은 19세기 사인소추주의에 입각한 영미법계에서 그 특성상 부족한 형사 수사권을 보충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인소추는 사인(私人), 즉 일반 민간인이 형사상의 소의 제기를 하는 방식으로 ‘범죄로부터 발생한 피해복구’를 주목적으로 한다. 영미권과 프랑스 등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인데, 사인이 소추를 진행하는 만큼 그 남용이 문제 될 수 있고, 이 경우 공공기관의 수사력 공급 부족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사설탐정이다. 따라서 형사(detective)가 아닌 사립 형사(private detective)가 우리가 생각하는 탐정이라 볼수 있겠다. 실제로 아직도 많은 국가들에서는 탐정업이 합법이다.

다만, 사립 탐정은 어디까지나 민간인이기 때문에 “국가의 수사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이런 제약 아래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특히 현대의 수사에는 다양한 기술과 시설, 자본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민간인은 합법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수사 기법이 많아 난제를 해결하기엔 유명무실한 제도라 볼 수도 있다. 공권력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공권력이 해결해줄 인력과 시간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가소추주의를 택하고 있어 탐정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제한되고, 이러한 배경에서 현대의 탐정업이 흥신소와 같은 이미지로 전락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한데 최근 재밌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탐정업이 합법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신용정보법에 따라 스스로를 탐정이라고 칭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작년 2월 신용정보법의 탐정 금지 조항이 삭제되면서 8월부터 탐정업이 본격 합법화되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왜 이제야 알아차렸나 모르겠다. 물론 아직은 제도화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민간조사업체가 탐정업이라고 당당히 명명하고 다닐 수 있는 정도에 그친 상황으로 보인다. 공인 자격증도 아직 없고, 민간조사사에 대한 제도도 정리가 덜 되어, 아직은 탐정에게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의 면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인적, 물적 자원은 물론이고 각종 기술과 제도상의 편의를 지원받을 수 있는 경찰과 수사 능력을 경쟁하는 것은 앞으로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만 너무나 많은 민원 속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공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다급한 개인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처럼 의미 없는 제도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

분명 치안의 수준은 과거에 비해 월등히 좋아진 요즘이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인 만큼 아직도 많은 이들이 치안 문제에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연일 뉴스에는 끔찍한 범죄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사람들은 ‘그것이 알고싶다’와 같은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 범죄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자각하고 우려한다. 또 아무리 심각한 사안이라도 해결이 어려운 경우 묻혀지거나 잊혀지기 십상이라는 것,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기관의 입장에서는 공권력의 합리적 효율적 활용을 위해 사건 해결을 연기·포기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피해자가 능동적으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난다. 그래서 공권력이 모든 것을 완벽히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두고, 기관을 개혁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탐정업의 합법화도 이런 과정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공익을 위하는 데에는 중재 기관이 꼭 필요하지만, 사익을 추구하는 데에는 개인들에게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게 해결을 맡기는 경우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효율성에 있다. 이제 개인들의 의식 수준도 기술 수준도 높아져서 스스로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유지 보수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몇 년 전에 변호사나 변리사들이 하는 일이 플랫폼 사업과 결합하면서 전문 직종 인들이 실직 위협에 걱정하는 기사를 보았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서비스가 나날이 발전하고 늘어나는 것을 보면 굳이 전문 직종 인들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간단히 앱으로 해결하면서 편리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탐정업도 관련 서비스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이 부대껴 살면서 매일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경찰의 일손은 늘 모자라다. 당장 경찰 일을 하는 내 친구도 2교대로 근무를 하면서 서울의 치안을 위해 늘 출동을 대기하고 있다.

관련 기사들을 보면 아직은 제도도 엉망이고, 기존의 민간조사업에 대한 나쁜 인식만큼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더 우려되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과거와 다르게 디지털 기술과 함께 시민들의 사회 참여가 더 적극적으로 변하였다. 공익을 위해서든 사익을 위해서든 개인의 능력을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잘 확립된 제도와 혁신적인 사업 모델의 등장이 함께한다면 금세 새로운 변화의 바람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셜록 홈즈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다만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개개인의 시민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탐정의 시대가 열리지는 않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우습지만 조금은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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