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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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니체
- 사이토 다카시
나에게는 어느 정도의 미래가 그려진다. 삶에 뼈대가 세워져 있다는 것은 축복 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가 선명해질수록 되려 나를 어떠한 책무로 데려다 놓기도 한다. 인생의 수레바퀴안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에 갑갑한 마음이 드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 수레바퀴를 탈출할 용기가 아니라 어떻게 윤택하게 굴러갈 지에 대한 사유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 인생의 진정한 도전은 재능을 펼쳐 최고가 되어 부와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곪아가는 부분을 찾아내고 그것을 용기 있게 도려내는 것이며 끊임없이 깨달으며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끝내 죽고 말듯이 인간도 낡은 사고의 허물에 갇히면 성장은커녕 안으로부터 썩기 시작해서 마침내 죽고 만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 니체 [아침놀] 中
니체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의 삶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사람은 삶의 방점을 미래에 두는 경향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이런 사람들에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왕’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시포스는 제우스를 속인 죄로 바윗덩어리를 산꼭대기로 굴려 올리는 벌을 받게 된다. 바위가 봉우리에 다다르면, 다시 산 반대편으로 떨어져버린다. 그 무의미한 일을 영겁의 세월을 견디며 반복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벌이었다. 시시포스는 그 무의미한 행위를 쉬지 않고 반복함으로써 절대자에게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시포스에게 한 가지 철학적 물음을 건넨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시시포스는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결과의 무의미함, 즉 ‘존재하지 않는 미래’ 라는 인간에게 있어 치명적인 절망을 과정의 충실함으로 극복했다.
지금의 나를 응시해본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그토록 목표했던 미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믿었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내 모습에 감동이 없다. 계속해서 이렇게 살다가는 어느정도 예상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내달리다가 시간이 다 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자꾸 사람들은 수레바퀴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가는 동안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인데 말이다. 다시 한번 시시포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바위를 밀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미래에선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삶의 내내 따분함, 권태감, 불안감과 싸운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꾸 미래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오히려 사람을 좀먹기도 한다. “지금은 운이 없을 뿐, 당신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또 다른 세계가 있을지 모르니 본래의 당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보라.”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지금은 볼품 없더라도 먼 훗날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말은 현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일 뿐이다. 현재를 나의 신념과 이상으로 채워 살아가는 것에 더 윤택한 삶이 있기를 바라며 니체의 “지금의 삶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라는 아포리즘을 마음 깊이 새긴다.
독창적인 사람은, 다른 이들도 이미 보았지만 아직 알아차리지 못해서 변변한 이름조차 없는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그것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사람이다.
- 니체 [즐거운 학문] 中
니체가 전하는 철학은 단순히 배우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글쓴이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철학은 목욕과 같다고 하였다. 정신의 때를 깨끗이 털어내주는 목욕 말이다. 한번 읽어버리고 만다면 ‘옛날에는 목욕을 하면 기분이 좋아 자주 했는데 요즘은 웬만해선 목욕을 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다시, 책은 도끼다’ 에서 말했듯이 주체적이며 반복되는 배움 안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천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사람이 아닌,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연습한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똑같은 것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은 삶의 즐거움 중에 하나이며 독창적이며 특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의 철학은 곁에 두고 벗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막론하고 서점에는 위로의 메세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어떤 위로 보다도 더 확실한 해결책은 결국 내면의 성장이다. 니체의 철학과 같은 변치 않는 고전을 가볍게 접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내면의 사고가 활발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좋은 책과 함께하는 경험이 내 안에서 더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며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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