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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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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2,929회 작성일 21-10-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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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알베르 까뮈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죄수의 딜레마' 라는 사례가 있다. 용의자 둘을 심문하는 중에 둘에게 각각 제안을 하는 것이다. 1. 두 사람 모두 순순히 범행을 자백한다면 모두에게 2년의 형벌을 부여한다. 2. 둘 중 한명만 자백한다면, 자백한 사람은 정직에 대한 보상으로 석방되며, 남은 한명은 5년의 형벌이 주어진다. 3. 두 사람 모두 범행을 부인한다면, 처벌할 수 있는 최대한을 활용하여 모두에게 6개월의 형벌을 부여한다.


 이러한 상황에 내가 용의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두사람 모두를 생각한다면 가장 좋은 행동은 범행을 부인하여 6개월씩의 형벌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만을 생각한다면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간에 자백을 하는것이 더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1. 상대방이 자백을 했다면, 나 역시 자백하는 것이 형벌을 줄이는 방법이며 
2. 상대방이 범행을 부인한다면, 나는 부인하기보단 자백을 하는 것이 형벌을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딜레마 안에서 결국 전체를 생각하지 못하고 개인을 생각하는 선택에 의해 둘 다 범행을 자백하고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이 딜레마는 게임 이론의 유명한 사례이지만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언급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삶의 곳곳에서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을 마주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고하여 처리해버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며 이 행동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 딜레마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 사회 전체를 곪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며, 소설 '페스트'는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에 놓여있는 인간집단의 연대기 이기도 하다.


 한 도시를 잘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 작은 도시에서는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열광적이면서도 건성으로 이뤄진다. (22페이지)


 소설의 배경은 '오랑'이라는 알제리의 프랑스령이다. 이곳에서는 이렇다 할 별다른 사건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살게된다. 매일 매일 돈벌이를 위해 일을 하고 저녁에는 여가를 즐기는 삶이 나쁘다고 탓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 곳 '오랑'의 사람은 그렇게 도덕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페스트의 발병은 그들의 삶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 전체의 극복이 필요한 상황임을 절감한다. 하지만 오랑 안의 개개인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페스트를 다룬다. 시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도지사는 다소 허황된 정책을 결정하기도 하며, 신자는 이 위기를 신앙심으로 이겨내려고 한다. 물론 이들의 개인적인 방식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려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매우 현실적인 성격으로 맡은 바 본분을 다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 중 이 소설의 주인공인 리외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리외는 의사이지만 인간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대단한 소명 아래 의사가 된 게 아니다. 그렇게 대단해보이지 않던 의사지만 페스트가 점차 확산될수록 그는 오랑 안에서 페스트를 가장 올바르게 마주하는 인물이 된다. 페스트로 인해 오랑은 이전처럼 활기가 없어졌다. 그 중 가장 사람을 못살게 굴었던 것은 바로 기한이 없는 이별에 대한 공포였다. 도시 전체를 봉쇄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그에게 추상적인 공포는 의미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병실에서 목도하는 그는 단지 이 시련을 끝내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도덕을 내세운다. 그에게 있어 페스트를 극복하는 법은 1. 페스트에 걸리지 않으며, 2. 페스트에 걸렸으면 남에게 옮기지 않는것이며 3. 걸렸으면 죽지않고 살아남는것이다. 리외는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자원 보건위생대를 세우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페스트와 싸운다.


 물론 리외가 오랑 사람들이 염려하는 공포, 페스트로 인해 폐쇄된 도시에서 행복하는 법 등, 추상적인 관념에 대해 무시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추상적인 관념이 있기 위해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연인을 만나기 위해 폐쇄된 오랑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기자 '랑베르'는 '리외' 역시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병원에 아내를 두고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뜬금없는 기억을 하나를 떠올려본다. 집 근처 작은 사거리였는데, 주말 아침이라 차가 없는 도로였다. 근데 그 곳에 한 가족이 서 있었다. 아빠의 어깨 위에, 그리고 엄마의 유모차 안에 한명씩 아이가 있었다. 아빠는 아이의 무게에 조금 지쳐보였지만, 묵묵히 신호를 기다린다. 문득, 엄마 아빠만 있었다면 그냥 신호를 무시한 채 횡단보도를 건넜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다한들 문제없을 정도로 짧은 2차선 도로였고,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이렇듯 개인이었을 때의 선택과 사회가 함께할때의 선택은 사소한것부터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리외는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 안에서 가장 존경받을만 한 사람이리라.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른 사람 낯짝에 대고 숨을 내뱉어서 그자에게 병균이 들러붙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것들, 예를 들어 건강함, 성실함, 순수함 등은 이를테면 의지, 그러니까 결코 멈춰서는 안되는 의지의 산물이죠. 존경받을 만한 사람, 즉 어느 누구에게도 거의 병균을 옮기지 않는 사람이란,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이죠. 그래요,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건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니까요. (323 페이지)


 사회에는 병균은 아니지만, 병균을 퍼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회에서 존경 받는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떠한 병균을 옮기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적당한 사회 규범이 갖춰져 있다면 그 안에서는 개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페스트를 읽고 난 뒤엔 그 존중에는 두가지 조건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수정하게 되었다.  첫번째는, 사회가 정한 규범에 오류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스스로 병균을 없애는 능력을 잃는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페스트는 우리 사회에 깔리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회 규범은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아주 면밀하게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두번째는, 내 행동이 사회적으로 청결한가 확인해야 한다. 개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본인에겐 병균이 아니더라고 때론 다른자에게 옮겨져 병균이 될 수 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하는 태도로 내가 사회안에서 나쁜 병균을 퍼트리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과연 리외는 도시에서 올라오는 환희에 찬 함성들을 들으면서, 이런 환희가 늘 위협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저 기쁨에 찬 군중이 모르고 있지만 꼭 알아야 할 사실들을, 그 역시 이전의 연대기들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방, 지하실, 손수건 속에서 참을성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40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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