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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발자국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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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3,022회 작성일 21-11-0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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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어느 날,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101번 고속도로에 이상한 광고판이 생겼다. 이 광고판에는 회사의 이름도 없었고, 홍보하려는 제품도 없었다. 하얀 바탕에 아래의 문장 하나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First 10-digit prime found in consecutive digits of e}.com


 수많은 사람이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다니며 이 광고판을 봤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쳤다. 몇몇 사람들은 아마 그 문구를 보고 호기심을 느꼈겠지만, 그 호기심을 이내 억누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기 바쁜데 이런 머리 아픈 광고판에 쏟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아주, 아주 일부의 사람은 이 광고판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외계어 같은 이 문구를 해석해보면, 오일러수(e)의 나열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10번째자리 소수(prime number)를 찾아 닷컴 앞에 넣으라는 말이다. 뜬금없는 광고판에 흥미를 느꼈던 소수의 사람은 컴퓨터를 켜고 답을 찾기 시작했고, 열심히 프로그래밍을 해서 문제의 해답을 찾았다. 문제의 답은 ‘7427466391’. ‘7427466391.com’라고 입력한 후 브라우저에 들어가니 또 다른 문제가 나왔다. 호기심에 이끌려 온 사람들이 두 번째 문제가 귀찮아서 풀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들은 다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진행하여 두 번째 문제를 풀고 다음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그 페이지에는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있었고, 문제를 푼 사람은 구글에 입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공채에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과하여 회사에 들어가는 한국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직원을 채용하는 구글의 아이디어는 매우 놀라웠고, 이 에피소드가 15년 전 이야기라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구글이 이런 방식으로 직원을 채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요상한 광고판을 보고 호기심을 가져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던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구글은 어떤 역량을 가진 인재를 원하는지 이 흥미로운 일화에서 알아볼 수 있다.


구글의 이 채용 방식은 창의적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파악하여 적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구글은 창의적인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르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렇듯이,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마 그 광고판을 보고 흥미를 느꼈을테지만, 이내 관심을 끄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갈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이 세상에서 보상이 없는 그 광고판에 굳이 시간을 들여 호기심을 푸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구글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결과가 어떨 지도 모르는 일에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들이는 것은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이라는 것을 말이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했던 구글의 채용으로 약 1만 5천명의 직원을 뽑았고, ‘호기심에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인재들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기업을 탄생시켰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한 구글 채용의 일화처럼 보상이 없어 보이거나 상사가 시키지 않은 일에는 좀처럼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반면,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신기한 것을 발견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발견하면 그것을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하며, 남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것들을 잘 포착한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은 구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은 나보다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내가 그것들을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진실’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은 그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비효율적인 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이것은 세상을 바꾸었던 대부분의 발명이 일어났던 이유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도 그렇다. 비단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나 발명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호기심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쏟는 사람은 대다수가 본인의 일도 매우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관찰해온 바로 그런 사람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과학과 공학을 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역량이라고 믿는다. 연구를 하는 우리 모두가 주위에 많은 것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또한 불편함을 느껴 그것에 자발적으로 기꺼이 시간을 지불하는 연구자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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