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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r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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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3,523회 작성일 21-08-0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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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r Nothing

 

이규섭

 

바야흐로 세계인의 축제가 열렸다. COVID19로 인해 1년 늦게 개막하기도 했거니와 그 과정에서 여러 잡음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자그마치 5년만에 열리는 큰 행사인만큼 막상 시작한 뒤로는 모두가 올림픽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나 역시도 이번엔 별로 관심이 안갈것이라 생각했건만, 들려오는 희소식에 펜싱이나 양궁 경기의 클립 영상을 보게 된다.

 All or Nothing. 최근 관람한 스포츠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결과는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우승하지 못한 팀에게 남겨지는 것은 허무함과 그에서 파생되는 악순환의 고리뿐이다. 스포츠의 세계는 정말 잔혹하다. 대회 내내 단 한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않은 선수만이 금메달을 따는 것.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세계인 것이다. 선수 생명은 다른 여타 직종에 비해 터무니 없이 짧고, 그 짧은 기간 마저 부상이라는 불운 앞에 예고도 없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선수들과 그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자들에게만, 아주 적은 빈도로 주어지는 메달의 기회, 경쟁의 극한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종종 스포츠 경기 속에서 능력주의와 무한경쟁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이곤 한다.

 

 모두가 절박하다.

 엘리트 체육인들의 모습을 볼 때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경기장은 압도적인 신체능력과 그에 준하는 정신력이 퍼포먼스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동작 하나하나가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것인지 이해하면 이내 경기장은 관객들의 탄성과 환호로 가득 차게 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 길을 걷던 친구들을 떠올린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된 훈련을 거듭하며 한계를 시험하던 아이들, 하지만 그들 중 프로의 길을 걷는 친구는 없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선수들은 그 사이에서 경쟁을 이겨내고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1회전에 탈락하고 마는 선수들 조차 천재 중의 천재, 일반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승패가 갈리는 순간에 패자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볼 때마다 수 백명의 달하는 선수 하나하나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절박함으로 달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상은 한정되어 있는데, 절박함은 누구나 가질 수가 있기에 서글프다. 천재 중의 천재들이 카메라 앵글 밖에서 패자라는 이름으로 스러져간다. 그럼에도 결과에 승복하는 의연함 앞에서 나는 한번 더 감동한다. 진정한 프로들에게 경의를.

 

 승리를 향한 갈망

 스포츠에서 메달(혹은 트로피)은 승리의 상징이다. 승리에는 보상이 따르고, 이기는 자에게는 그에 따른 영예가 주어지는게 마땅한 일이다. 여느 개그 코너의 유행어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사람들은 금메달리스트만을 기억한다. 멋진 경기를 펼친 다른 선수들이 잠깐 이슈가 되겠으나, 남는 것은 기록인지라 시간이 지난 뒤에는 1등만 기억에 남는 것은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스포츠에서는 결과론 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전설적인 축구선수인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말했듯,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란 말로 일축되기 마련이다. 선수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는 것은 이러한 스포츠의 숙명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무한 경쟁의 어두운 면을 들춰낸다. 금지약물 이슈는 현대 스포츠에서 사라지지 않는 오점이며, 승자 독식의 구조에 희생된 이들에겐 승부조작이라는 이름의 마수가 손을 뻗고 있다. 그 뿐인가, 소속 팀의 능력과 부에 따른 불평등은 더 모호해서 특정하기도 어렵다.

 

 규칙 – 스포츠의 또 다른 요소

여지껏 스포츠를 관람하면서 보아온 승리하는 선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세대를 압도하는 재능으로 무난히 승리를 거머쥐는 타입이고, 나머지 하나는 천부적인 신체 능력과 함께 규칙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함을 지닌 유형이다. 규칙은 스포츠를 단순한 경쟁과 구분지어주는 요소다. 규칙의 경계 안에서 경쟁을 일으킴으로써, 얼마나 공정하게 경쟁이 이루어지는지 보면서 경쟁의 ‘과정’을 더 의미있게 만든다. 그래서 스포츠에서는 무엇보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가장 강조된다. 경쟁이 결과만을 의미있게 만드는 요소라면, ‘규칙’은 그 과정에 의미를 더하는 요소인 것이다. 그렇게 단순히 옳음을 위해서가 아닌 스포츠라는 시스템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 페어플레이가 요구되는 이상적인 구조가 완성된다.

하지만 승리가 주는 달콤함과 그 결과가 가져다 주는 영원한 명예는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든다. 사람들은 점차 승리를 위한 수단에 관대해지고, 규칙은 해석하려 들게 된다. 두 번째 유형의 선수들은 규칙이라는 범위를 최대한 확대 해석하려고 한다. 공정함을 위해 그어놓은 예방선을 본래의 의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승리를 위한 수단이 되고, 규칙의 특수성 마저도 하나의 도구가 된다. 상대 입장에서는 이런 약삭빠른 선수들을 보면 약이 오른다. 하지만 이것을 비난할 근거는 없다. 그들 말마따나 반칙이 아니거니와, 규칙의 재해석은 다른 의미의 불평등을 해소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재능을 자신의 방식으로 무너뜨리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희열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규칙의 경계선 타기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비열함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승리에 대한 유혹이 페어플레이 정신이라는 스포츠의 근본 정신보다 우선 시 되는 결과중심적인 사고가 만연한 사회의 탓인지도 모른다.

 

스포츠를 즐기는 다양한 자세

 얼마 전 이번 올림픽을 감상하는 국민들의 자세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훌륭하다던가,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던가 하는 말들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패배를 위로하고 합리화 하기 위한 느낌이 더 강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보면 사람들은 결과에 무관하게 선수들을 응원했고, 결과 만큼이나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한 예로, 유도와 펜싱 경기는 마지막 경기의 패배가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그 전의 경기에서 보여준 멋진 모습들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방송사의 가벼운 언행과 실수들에 강력한 항의와 비판이 쏟아졌다. 여전히 결과론 적인 세상이고 세상은 1등만을 기억할 것이며, 이번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메달에 집착하기 보다 선수 개개인을 응원하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문화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분명 지난 대회와는 그리고 또 지지난 대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조금씩 바뀌는 것이라 생각한다.

 

 스포츠의 세계는 경쟁 그 자체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환경이기에 반대로 과정이 가져다 주는 의미가 극대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승전만이 아닌 모든 경기를 관람한다. 생각해보면 승자의 이름만이 남는 것이 아니다. 명 경기도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다. 그것은 승자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의 파편들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는다. 승리를 포기하고 동료를 위하는 모습. 공정한 대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패자는 승자를 승자는 패자를 존중하는 모습.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 그리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그 결실을 기적처럼 이루는 모습. 각자의 이야기가 경기장에서 풀어지고, 수없이 반복되는 경기이건만 매번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 순간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그러니 이 단순한 놀이들이 그저 놀음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지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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